중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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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나라]] 이전의 시기 ===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선진 시기’(先秦時期)라고도 한다. [[하나라|하]](夏) ([[기원전 21세기]] - [[기원전 17세기]])의 경우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으나, 대체로 실존했던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f>柳正熙,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89966 《中國夏王朝에 대한 簡略한 理解》], 현대기획, 2004</ref> 하를 무너뜨리고 세운 [[상나라|상]](商) ([[기원전 17세기]] - [[기원전 11세기]] 중반)은 은허로 수도를 옮긴 이후에 은(殷)이라고도 부르며, 한때 신화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은허의 유적 발굴 이후 실존했던 국가로 인정되었다.
[[주나라|주]](周) ([[기원전 1050년]] 경 - [[기원전 256년]])는 본래 상(은)나라의 제후국이었으나, 상(은)나라 말기 주왕(紂王)의 폭압으로 상(은)나라를 무너뜨리고 패권을 잡은 나라다. 이 때 주의 왕을 처음으로 ‘천자’(天子)라고 불렀다. 주의 패권은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가 되면서 약해지기 시작한다. [[춘추 시대]]에는 여러 주나라의 제후국들이 주의 천자를 존중하고 각자의 세력을 다투던 시기로, 세력이 강한 제후국들 중에 주 왕실의 이름으로 천하를 호령한 제(齊)-환공(桓公), 진(晉)-문공(文公), 초(楚)-장왕(莊王), 오(吳)-합려(闔閭), 월(越)-구천(勾踐)의 5제후를 [[춘추 오패]]라고 부른다. [[전국 시대]]로 들어서면서 천자에 대한 충성마저 약화되기 시작한 시기로, 진(秦), 한(韓), 제(齊), 위
[[위 (삼국)|위]](魏)는 [[조비]]가 후한의 황제로부터 직접 제위를 물려받은 국가로 중원 지역을 차지하였다. [[촉 (삼국)|촉]](蜀) 후한 황실의 후예인 [[유비]]가 계승하였으나, 세력권은 서남 지방에 한정되었다. 한편 [[손권]]의 [[오 (삼국)|오]](吳)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장강]] 이남을 차지하였다. 위는 [[사마염]]의 [[서진]](西晉) ([[265년]] - [[316년]])에게 승계되며 서진이 삼국을 통일하게 되나, 초기부터 황실 분란인 [[팔왕의 난]] 등으로 혼란스럽다가, 흉노족의 전조에게 멸망당한다. 서진의 멸망 이후 서진이 있던 자리에 16개의 국가가 들어서 패권을 겨뤘으니 이를 [[십육국 시대]](十六國時代) ([[316년]] - [[439년]])라 한다. 비한족 국가인 전조(前趙)·후조·전연(前燕)·후연· 남연, 관중(關中)에 있던 전진(前秦)·후진·서진 및 하투(河套)의 하(夏), 사천(四川)의 성한(成漢), 하서(河西)의 후량·북량·남량과, 한족 국가인 북연, 하서(河西)의 전량(前涼), 서량이 있었으며, 전조, 후조, 전진 등이 한때 큰 세력권을 과시했으나 결국 [[북조 (중국)|북조]]의 북위로 통합된다. [[북위 (북조)|북위]](北魏)는 [[선비족]] [[탁발씨]]의 국가로, 3대 태무제의 시기에 [[화북]]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북위는 곧 [[동위 (북조)|동위]](東魏)와 [[서위 (북조)|서위]](西魏)로 분리되고, 동위는 [[북제]](北齊), 서위는 [[북주]](北周)로 이어진다. 북제는 이후 북주에 흡수되고, 북주는 왕실 외척인 [[수 문제|양견]]에 의해 [[수나라|수]](隋)로 국호를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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