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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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erritories of Dynasties in China.gif|섬네일|260px|오른쪽|중국의 역사]]
[[파일:Yellowrivermap-2.jpg|thumb|200px|황하]]
[[황하 문명]] 탄생 이래 [[중국 본토]]에서는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이래 약 5000년 동안 수많은 왕조가 흥망을 반복해 왔다. [[한나라]] 때 [[중화민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의 기틀을 세웠고, [[당나라]]는 서방의 [[페르시아]], [[이슬람 제국]], [[동로마 제국]]과의 교류도 성하였다. [[송나라]] 때에는 중국 중세 문화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제1차 아편 전쟁]]과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가 [[영국]]에 패배한 이후, [[중국 본토]]는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했고 [[홍콩]]은 [[영국]]에 넘어갔으며 [[마카오]]는 [[포르투갈]]에 넘어갔다.
 
[[청나라]]의 무능에 반발하여 [[태평 천국|태평 천국 운동]]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그 후 [[한족]]의 개혁파 관료들에 의해 [[양무 운동]]과 [[변법 자강 운동]]이 차례로 일어났으나 열강의 간섭으로 실패했다. 한편 [[서태후]] 등 보수파의 사주로 반외세 운동인 [[의화단 운동]]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그 후 [[신해혁명]]이 일어나 [[1912년]]에는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하지만 각지의 군벌에 의한 내전이나 [[몽골]], [[티베트]]의 독립 운동 등으로 말미암아 [[중화민국]]은 분열되었다. 또한 [[1930년]]대에는 [[국공 내전]](중국에서는 보통 “해방 전쟁”이라 칭함)과 [[중일 전쟁]](중국에서는 보통 “항일전쟁”이라 칭함)이 발발하여 중국 각지가 전장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중앙 정부가 2개 이상인 때에도 있었다.
 
그 후 중일 전쟁 중에 세력을 늘려 온 [[중국 공산당]]이 [[1945년]]의 [[일본]](日本) 패배 이후 국공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웠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매년 10월 1일을 [[국경절]]로 정하고 이를 기념한다.
 
== 신화시대 ==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고대의 전설적 제왕들이다. 삼황(三皇)은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媧氏)를 말하며, 오제(五帝)는 황제헌원(黃帝軒轅),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방훈(帝堯放勳:陶唐氏), 제순중화(帝舜重華:有虞氏)를 지칭한다.
 
== 문명의 태동 ==
* [[장강 문명]](長江文明)
* [[황하 문명]](黄河文明)
 
=== [[진나라]] 이전의 시기 ===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선진 시기’(先秦時期)라고도 한다. [[하나라|하]](夏) ([[기원전 21세기]] - [[기원전 17세기]])의 경우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으나, 대체로 실존했던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f>柳正熙,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89966 《中國夏王朝에 대한 簡略한 理解》], 현대기획, 2004</ref> 하를 무너뜨리고 세운 [[상나라|상]](商) ([[기원전 17세기]] - [[기원전 11세기]] 중반)은 은허로 수도를 옮긴 이후에 은(殷)이라고도 부르며, 한때 신화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은허의 유적 발굴 이후 실존했던 국가로 인정되었다.
 
[[주나라|주]](周) ([[기원전 1050년]] 경 - [[기원전 256년]])는 본래 상(은)나라의 제후국이었으나, 상(은)나라 말기 주왕(紂王)의 폭압으로 상(은)나라를 무너뜨리고 패권을 잡은 나라다. 이 때 주의 왕을 처음으로 ‘천자’(天子)라고 불렀다. 주의 패권은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가 되면서 약해지기 시작한다. [[춘추 시대]]에는 여러 주나라의 제후국들이 주의 천자를 존중하고 각자의 세력을 다투던 시기로, 세력이 강한 제후국들 중에 주 왕실의 이름으로 천하를 호령한 제(齊)-환공(桓公), 진(晉)-문공(文公), 초(楚)-장왕(莊王), 오(吳)-합려(闔閭), 월(越)-구천(勾踐)의 5제후를 [[춘추 오패]]라고 부른다. [[전국 시대]]로 들어서면서 천자에 대한 충성마저 약화되기 시작한 시기로, 진(秦), 한(韓), 제(齊), 위(魏), 조(趙), 연(燕), 초(楚)라는 [[전국 칠웅]]이 차례로 왕을 칭하고 오로지 천하 통일을 위해 질주하였다.
 
== 고대사 ==
=== 진한 시기 ===
[[진나라|진]](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7년]])은 한(韓), 제(齊), 위(魏), 조(趙), 연(燕), 초(楚)를 무너뜨리고 [[중국 본토]]를 통일하였다. 진은 이어 모든 제후국을 폐지하고 조정에서 직접 다스리는 [[군현제]]를 처음 실시하였다. 이어 [[진 시황제|진왕 영정]]은 처음으로 ‘황제’(皇帝)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진(秦)나라의 무리한 통치와 폭압으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진나라]]는 [[진 이세황제]]의 치세에 몰락하여, 그 뒤 멸망하였고, [[초한전]]을 거쳐 [[한나라]]가 중원을 통일한다. 한나라는 200년 넘게 유지된 중앙집권적 국가로 서양에 최초로 이름이 알려진 나라이기도 하다. [[전한]](前漢) ([[기원전 206년]] - [[9년|서기 9년]])은 한나라(전한)의 외척이었던 [[왕망]]이 황위를 찬탈하여 세운 [[신나라|신]](新) ([[9년]] - [[23년]])에 의해 잠시 명맥이 끊기나, 신나라는 급격한 개혁이 민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각지의 반란으로 망하였고, 한나라(전한)를 계승한 국가인 [[후한]](後漢) ([[25년]] - [[220년]])이 다시 통일 국가를 이루었으나, 무제 이후의 황권은 환관들과 외척들로 인하여 크게 약화되었다. [[위 (삼국)|위]]에게 멸망당했다.
 
=== 위진 남북조 시기 ===
[[대한민국]]에서는 [[삼국 시대 (중국)|삼국 시대]](三國時代) ([[220년]] - [[280년]])라고 하지만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39년]] - [[589년]]) 까지 포괄하여 위진 남북조 시기라고 한다.
 
[[위 (삼국)|위]](魏)는 [[조비]]가 후한의 황제로부터 직접 제위를 물려받은 국가로 중원 지역을 차지하였다. [[촉 (삼국)|촉]](蜀) 후한 황실의 후예인 [[유비]]가 계승하였으나, 세력권은 서남 지방에 한정되었다. 한편 [[손권]]의 [[오 (삼국)|오]](吳)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장강]] 이남을 차지하였다. 위는 [[사마염]]의 [[서진]](西晉) ([[265년]] - [[316년]])에게 승계되며 서진이 삼국을 통일하게 되나, 초기부터 황실 분란인 [[팔왕의 난]] 등으로 혼란스럽다가, 흉노족의 전조에게 멸망당한다. 서진의 멸망 이후 서진이 있던 자리에 16개의 국가가 들어서 패권을 겨뤘으니 이를 [[십육국 시대]](十六國時代) ([[316년]] - [[439년]])라 한다. 비한족 국가인 전조(前趙)·후조·전연(前燕)·후연· 남연, 관중(關中)에 있던 전진(前秦)·후진·서진 및 하투(河套)의 하(夏), 사천(四川)의 성한(成漢), 하서(河西)의 후량·북량·남량과, 한족 국가인 북연, 하서(河西)의 전량(前涼), 서량이 있었으며, 전조, 후조, 전진 등이 한때 큰 세력권을 과시했으나 결국 [[북조 (중국)|북조]]의 북위로 통합된다. [[북위 (북조)|북위]](北魏)는 [[선비족]] [[탁발씨]]의 국가로, 3대 태무제의 시기에 [[화북]]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북위는 곧 [[동위 (북조)|동위]](東魏)와 [[서위 (북조)|서위]](西魏)로 분리되고, 동위는 [[북제]](北齊), 서위는 [[북주]](北周)로 이어진다. 북제는 이후 북주에 흡수되고, 북주는 왕실 외척인 [[수 문제|양견]]에 의해 [[수나라|수]](隋)로 국호를 바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