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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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공화국은 공화국의 훌륭한 교회법학자인 파올로 사르피 신부에게 공로를 치하하는 차원에서 국가 공문서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국가변호사 지위를 수여했다. 이 소식은 바오로 5세를 극도로 화나게 만들었다. 1607년 9월 사르비 신부를 로마로 오도록 꼬드기는데 실패한 교황은 그에 대한 살인을 청부했다.<ref name="ROB">Robertson, Alexander, ''Fra Paolo Sarpi: the Greatest of the Venetians'', London: Sampson, Low, Marston & Co. (1893), pp. 114–117</ref><ref>Watson, J. Henry, ''The History of Fra Paolo Sarpi'', New York: La Croce (1911)</ref> 사르피 신부는 최소한 9월과 10월에 두 차례 암살 표적이 되었다.<ref name="ROB"/> 단도로 15회 찔린 사르피 신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으며, 암살범들은 교황령으로 달아나 몸을 숨겼다.<ref name="ROB"/>
 
====잉글랜드와의 관계====
외교에 있어서 바오로 5세의 강경한 자세는 [[잉글랜드]]의 온건파 가톨릭 신자들의 상황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1606년 7월 9일 그는 [[제임스 1세]]가 즉위한지 3년이 지나서야 그의 등극을 축하하는 친서를 보냈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의 시작에 불과했다.
 
====일본과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