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성 (도요하시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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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
[[1610년]] 이에키요가 죽자 아들 [[마쓰다이라 다다키요]]가 번주에 올랐지만, 2년후인 [[1612년]] 죽고, 후계가 없어 영지는 몰수 되었다. 대신 미카와 국 [[후코즈 번]]에서 [[마쓰다이라 다다토시 (1582년)|마쓰다이라 다다토시]]가 번주로 입성한 이후 후코즈 마쓰다이라 가문(1612년 ~ [[1632년]]), 누마쓰누마즈 미즈노 가문(1632년 ~ [[1642년]]), 야마가타 미즈노 가문(1642년 ~ [[1645년]]), 오가사와라 가문(1645년 ~ [[1697년]]), 구제 가문(1697년 ~ [[1705년]]), 마키노 가문(1705년 ~ [[1712년]]), 나가사와·오코치 마쓰다이라 가문(1712년 ~ [[1729년]], [[1749년]] ~ [[1871년]]), 혼쇼 마쓰다이라 가문(1729년 ~ 1749년), 도합 9가문 22명이 성주로 역임한 [[후다이 다이묘]]의 거성이었다. 단, 이케다 데루마사와 그 이전 성주였던 시기는 제외하였다.
 
요시다 성주로 역임한 가문의 수가 많고, 기간 또한 적기 때문에 번주 가문의 제를 대대로 모시는 사찰이 없었다가, 오가사와라 가문이 성주로 부임한 기간동안 조성되었으며, 이 무렵 성과 주변 마을이 정비되고, 번정이 기초가 확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