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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황실의 후예가 세운 마지막 한나라이기에 '''계한'''(季漢)으로도 부른다. [[연강 (후한)|연강]] 원년([[220년]]), 사실상 [[한나라]]의 실권을 잡고 있던 [[위군|위]][[왕 (작위)|왕]] [[조비]]가 [[후한 헌제|헌제]]를 내쫓고 [[위 (삼국)|조위]]를 건국하자, 당시 [[익주]]를 점거하고 있었던 [[유비]]가 한 황실의 후예라는 정통성을 내세워 [[221년]]에 황제임을 선언하고, 국호를 ‘한(漢)’이라 하고 연호를 [[장무 (촉한)|장무]](章武)라 하였다. 수도는 [[청두|성도]](成都)이다.
 
선주(先主) [[유비]]는 자신의 의동생인 [[관우]]를 죽인 [[오 (삼국)|오]]를 토벌하기 위해 대대적인 군사를 일으키는데, [[이릉 대전|이릉]]에서 [[육손]]에 계책에 크게 패하면서 [[백제성]]에 눌러앉게 되고, 결국 사망하였다. 유비 사후 [[유선 (공사)|후주]](後主) 유선이 즉위하였고, 연호를 [[건흥 (촉한)|건흥]]으로 고쳤다. 승상 [[제갈량]]은 [[남만]]을 토벌해 [[맹획]]을 일곱번 사로잡고 놓아주었는데, 이에 맹획이 항복하고 남만은 평정되었다. 또 제갈량은 북벌에 나섰는데, 이 때 올려진 것이 그 유명한 [[출사표]]이다. 하지만 [[진지 (촉한)|진지]] · [[황호]]와 같은 간신의 전횡과 연이은 [[북벌]] 실패로 인해 촉한 궁중의 정치를 제대로 처리할 사람이 없고 많은 힘이 소모되어 점점 쇠망의 길을 걸었으며, 특히 황호가 정권을 장악한 경요, 염흥 연간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염흥]] 원년([[263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강유는 대대적인 침공으로 2년 만에 위에 장안을 점령하고 낙양을 점령하여 조위를 무너뜨렸고 그이어 한을 바로잡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 역대 황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