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카타 가쓰타카 (164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5번째 줄:
[[1683년]], [[에도]]에서 영지로 돌아온 가쓰타카는 병을 이유로 은거하려 하면서, 자식이 없는 관계로 막내 동생인 [[히지카타 사다타쓰|사다타쓰]]를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가신들 중 일부가 본래 적자였던 가쓰노부의 아들 [[히지카타 다쿠미|다쿠미]]를 후계자로 내세웠다. [[1684년]], 가쓰타카는 이를 받아들이고 후계자 승계를 막부에 요청하기 위해 다쿠미를 에도로 데려갔다. 하지만 가신단은 둘로 나뉘어 여전히 다투었고, 사다타쓰도 이 분쟁에 적극 개입하였다. 결국 이 와중에 가쓰타카의 측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일련의 상황을 알게 된 막부는 번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 그해 음력 7월 22일, 구보타 번을 폐지하고 영지를 몰수하였다. 가쓰타카는 [[무라카미 번]]의 [[사카키바라 마사쿠니]]에게, 사다타쓰는 [[히사이 번]]의 [[도도 다카미치]]에게 보내졌으며, 다쿠미는 [[하치조 섬]]으로 유배되었다. 가신들 대부분, 그리고 중재를 맡았음에도 이를 방치한 [[마쓰자키 번]]주 [[아리마 도요스케]]도 연좌 처벌을 받았다. [[1691년]], 가쓰타카는 50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전임후임|
|전임자=[[히지카타 가쓰쓰구]]
|후임자=개역
|직책=[[구보타 번 (무쓰노쿠니무쓰 국)|구보타 번]] 번주 (히지카타가)
|대수=3
|임기=[[1679년]] ~ [[16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