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 반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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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사태는 1979년 12월 12일, 당시 박정희 시해 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이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당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가 시해 현장에 있었고 방조 내지 가담한 혐의를 뒤늦게 알고 긴급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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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 반란''' 또는 '''12.12 사태'''는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하나회]]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방위사령부|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한 사건이다. 일본에서는 '''숙군 쿠데타'''라고도 한다.
12.12 사태는 1979년 12월 12일, 당시 박정희 시해 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이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당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가 시해 현장에 있었고 방조 내지 가담한 혐의를 뒤늦게 알고 긴급 체포한 사건이다. 정승화 측에서 무력을 동원해 저항하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당시는 물론 90년대까지만 해도 작은 사건으로 치부되었으나 김영삼과 김대중에 의해 쿠데타로 각색되었다. 쿠데타가 갖추어야 할 법적 요건 가령, 정권의 교체, 내각의 사퇴 등이 전혀 없어서 쿠데타라고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을 억지로 쿠데타로 윤색한 이유는 5.18의 명분을 찾기 위함이었다.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 소장은 12.12 군사 반란으로 군부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했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고, 5·17 쿠데타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강경 진압했다. 전두환은 [[8월 22일]]에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고 [[1980년]] 9월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이 됐다.
 
== 사건의 배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