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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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위와 여생 ===
정종은 왕자의 난을 이유로 수도를 한성에서 [[개경]]으로 옮겼으나 다음 해인 [[1400년|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동생 [[조선 태종|정안공]]을 [[왕세자|왕세제]]로 책봉하고<ref>*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ba_10202004_001&tabid=k 조선왕조실록 정종 3권, 2년(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2월 4일(기해) 1번째기사]</ref> 9개월 뒤인 음력 11월 13일에 왕세제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났다. 맏형으로서 남아있는 형제들간의 반목을 일소하고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선택이었으며, 재위중에는 형제간의 친목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재위중에,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133466&q=삼성 삼성](三省)이 [[회안대군]]을 탄핵하기위해 논의하려 할때, 동모제(同母弟, 친동생)의 형친(兄親)의 정으로서 논의를 미연에 차단 금지시켰다. 이후 상왕으로 물러난 정종은 [[인덕궁]](仁德宮)에서 거주하면서 사냥과 격구, 연회, 온천여행 등으로 세월을 보내다 [[1419년|세종 1년]](1419) [[음력 9월 26일]]에 63세의 나이에 승하하였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