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이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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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이씨(星州 李氏)의 시조인 [[이순유]](李純由)는 [[알평]]의 후손으로 신라 말엽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으며 경순왕조(敬順王朝ㆍ927~935년)에 재상(宰相)까지 올랐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이순유는 아우 이돈유(李敦由)와 더불어 기울어져 가는 신라의 마지막을 지켜본 충신으로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민심을 수습하고 천년의 사직(社稷)을 보존하기 위하여 구국의 방책을 기도하였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름마저 극신(克臣)이라 고쳐 지금의 성주읍 경산리(京山里)에 옮겨 숨어 살았다고 한다.
 
이순유의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은 [[고려 고종]] 때의 인물로 슬하에 다섯 아들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치자 국왕은 그에게 특별히 삼중대광(三重大匡) 좌시중(左侍中)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지전리사사(知典理司事) 상호군(上護軍) 경산부원군(京山府院君)에 봉하였다. [[충렬왕]] 이후 성주목(星州牧)의 지명을 따라 성주 이씨(星州李氏)라고 하게 되었다.
 
한편, 이천년(李千年)의 둘째 아들 [[이승경 (1290년)|이승경]](李承慶)은 원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지내며 공적을 세워 원나라 황제가 그의 할아버지 [[이장경]]을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하였으므로 [[농서 이씨]]라고도 하였다. [[명나라]]의 장수로 [[임진왜란]] 때 [[조선]]에 들어온 [[이여송]]이 그의 후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