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원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33번째 줄:
 
=== [[백제]]와의 전쟁 ===
369년에 백제가 [[마한]]을 정복하러 간 틈을 타, 고국원왕은 보·기병 2만 명을 이끌고 치양성(雉壤城, 현 [[황해남도]] [[배천군]], 구 모로성)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근초고왕의 말 말굽을 상하게 한 죄를 짓고, 고구려로 달아났던 백제인 [[사기_(백제)|사기]](斯紀)가 다시 백제에 투항하여, ‘고구려의 군사가 많기는 하나, 모두 숫자만 채운 허세일 뿐, 날래고 용감한 자들은 붉은 깃발의 군대뿐’이라는 고구려의 군사정보를 백제의 근구수 태자에게 알려주었다. 이로써 고국원왕은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백제에게 수곡성(水谷城: 지금의 [[황해도]] [[신계군]])까지 영토를 내주고 말았다. 371년에 고국원왕은 복수를 위해 군사를 일으켜, 백제로 재침공하였다. 하지만 패하(浿河; 대동강) 강가에 군사를 매복한 근초고왕이 기습적으로 공격하자, 고구려군은 크게 패하고 말았다. 기세를 탄 근초고왕은 동년 10월에 정예 군사 3만을 이끌고, 평양성으로[[평양성]]으로 진격해 왔고, 고구려군은 이를 어렵게 물리쳤으나, 고국원왕이 전사하고 말았다. 고국원왕은 고국(故國)의 들[原]에 장사지내졌다.
 
== 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