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
편집 요약 없음 |
||
23번째 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아버지인 베르나르도 디 니콜로 마케아벨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4년]]에 [[메디치 가]]가 몰락할 무렵 공직에 입신하여 피렌체의 공화국 10인 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었으며, 외교 사절로서 신성 로마 제국 등 여러 외국 군주들에게 사절로 파견되면서 독자적인 정치적 견해를 구축하였다. 1498년부터 1512년까지는 공화국 제2재무성의 장관도 역임하였다.
외교와 군사 방면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나, [[1512년]] [[스페인]]의
1502년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절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만났다. 그는 당시
[[1513년]]에는 메디치 군주정에 대한 반란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같은 해 [[교황 레오 10세]]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코시모 루첼라이라는 공화주의파의 주도하에 이뤄진 '오리첼라리 정원의 모임'으로 알려진 피렌체 [[공화주의]]자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그의 [[로마사 논고]]는 바로 코시모 루첼라이에게 헌정되었다. 이 저작은 피렌체 공화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저작이며 로마 공화정을 비롯한 공화국들의 긍정적 역량을 최대한
== 정치철학 ==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지도자가 기회를 인식하고 포착할 수 있으며 상대보다 생각이 앞서게 되고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運)은 모든 전략전 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 마키아벨리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