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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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2세]]가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2월 혁명]]으로 인해 퇴위를 하자, 니콜라이 2세의 가족은 그에 따라 체포되었다. 그들은 1917년의 겨울에 [[토볼스크]]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토볼스크에 억류되어 있을 때, 알렉세이는 그의 일기장에 얼마나 그가 지루한지에 대해 불평했고 또 신에게 그에게 자비를 내려줄 것을 기도했다. 알렉세이 황태자는 가끔 그의 의사의 아들인 콜랴와 부엌 소년인 레오니드 세드네브와 함께 노는 것만이 허용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알렉세이 황태자는 꼭 일부러 스스로를 다치게 하고 싶어하는 유혹에 빠진 것 같았다. 시베리아에 있었을때 그는 감옥의 지하 계단 아래로 썰매를 탔고 사타구니를 다쳤다. 혈우병을 가진 그에게 출혈은 매우 치명적이었고 그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1918년 4월 그들이 [[예카테린부르크]]에 갈 때 그는 이동할 수 없었고, 결국 그의 세 명의 누나와 함께 몇주 뒤 뒤늦게 합류하였다. 그리고 그는 7월,그가 죽기 직전까지 휠체어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들이 예카테린부르크에 있는 지하실에서 1918년 7월 16일에 잔인하게 살해당했을때살해당했을 때 그는 14번째 생일을 한달도 채 남겨두지 않았다. 이 일은 볼셰비키 비밀 경찰인 야코프 유로프스키의 지휘 아래 실시되었다.
황제 가족은 한밤중에 지하실로 내려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다.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알렉세이 황태자를 부축하여 이동했다. 어머니 알렉산드라 황후는 자신과 알렉세이를 위해 의자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황제 가족과 하인이 자리를 잡았을때 유로프스키는 그들을 죽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니콜라이 2세 황제가 먼저 총살당했고 황후와 두 하인이 죽었다. 알렉세이 황태자는 반복적으로 총격을 당하기 전에 겁에 질려 의자에 앉아있었다. 황태자는 계속 죽지 않았고,볼셰비키 당원은 그를 여러번 총검으로 찔렀다. 유로프스키는 '그는 정말 죽지 않았어요. 그는 부상을 입었지만, 계속 살아 있었어요.' 라고 기록했다.
 
황태자의 몸은 그가 입은 옷에 달린 귀중한 보석에 의해 보호되었다. 결국 유로프스키는 황태자의 머리에 두 번이나 총을 겨누었고, 그때서야 그는 조용히 사망했다.
 
알렉세이 황태자가 생존했다는 소문은 황제 가족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을때까지 계속해서 돌았다. 알렉세이는 그의 세 번째 누나인 마리아와 함께 실종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네 번째 누나 아나스타샤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후에 많은 사람들이 황태자를 사칭하게 되었다. Alexei Poutziato, Joseph Veres, Heino Tammet 등이 바로 그 사기꾼들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를 평생에 걸쳐 괴롭힌 혈우병으로 인해 그의 탈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라진 두 시신은 화장 되었다고 여겨졌지만 과학자들은 짦은 시간과 한정된 물질로 그들의 시신을 완벽하게 화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