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 기관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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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의 증기 기관차 ===
한국에서는 1899년에 [[경인선]] 철도 개통과 함께 [[모가형 증기 기관차]]가 도입된 것이 최초이다.최초이며 이후, [[경부선]]의 개통과 더불어 증기 기관차의 도입은 확대확대된다. 일로를 걷게 되며, [[일제 강점기]]에 노선망이 신장하게이후 되면서계속해서 다종다양한 증기 기관차가 도입되게 되었다.도입되며, 특히, 1920년 경 이후부터는 용산 공작창(현재의 용산역 일대)에서 자체적으로 증기 기관차를 조립 생산하기에 이르렀으며, 이후 기관차의 고성능화 및 급행열차 운전이 본격화되면서, [[파시형 증기 기관차]], [[미카형 증기 기관차]] 등 대형 기관차들이 속속 도입되었다.
 
해방 이후 일본인기술 기술자의 유출과부족과 경제적, 정치적 혼란 와중에서도 용산 공작창에서는 남은 부속과 미 군정청으로부터 지원받은 부속을 바탕으로 [[파시형 증기 기관차]] 등을 추가 생산하여 여객 일선에 투입하기도 하였으나,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철도 시설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으며 그 결과 기관차의 신규 생산 능력은 물론, 정비와 검사 능력 역시 크게 악화되었다. 이 당시 차량의 수급이나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수 종류의 증기 기관차를 원조받아원조를 받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증기 기관차는 한동안 철도 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점차 새로 도입되는 디젤 기관차에 의해서 그 역할은 점차 축소되었다. 증기 기관차는 일반적인 디젤 기관차나 [[전기 기관차]]에 비해 연비가 나쁘고 성능 면에서도 충분하지 못했으며 더욱이 대개의 차량이 중고 도입 내지는 일제 당시에 생산된 차량으로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증기기관차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철도의 동력 근대화가 추진되면서 증기기관차는 1967년 8월 31일에 공식적으로 정기 열차로써의 역할은 종료하게 되었으며 이후 임시 또는 입환용 기관차로서 서서히 도태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