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신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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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고현]] 태생으로 이쿠에이 고등학교와 [[교토 산업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 야구팀인 [[고베 제강소]]를 거쳐 197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4순위로 [[오릭스 버펄로스|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 상시 선발 멤버로 가지 않았지만<ref>출전 기회가 많았던 1981년, 1982년, 1984년에 대해서 상대 팀의 선발이 우완 투수인 경우에는 거의 부동의 선발 멤버였던 한편 좌완 투수의 경우에는 고바야시가 아닌 [[야마모리 마사후미]], [[요시자와 도시유키]], [[아리가 요시히로]] 등과 같은 우타자의 외야수가 기용되는 경기가 많았다. 정찰 오더가 짜여져 선발이 우완 투수인 경우에 고바야시가 출전하는 경기도 가끔 있었다. 타순에서는 6번 타자로 뛴 적이 가장 많았고 그 외에 2번, 5번, 7번 등(1982년 후기 시즌은 2번, 1984년은 6번으로 거의 고정됨) 3번 타자로서의 경기 출전도 있었다.</ref> 주로 좌익수, 대타, 대수비 요원으로서 활약을 했고 1987년 시즌 마지막으로 10년 간의 현역 생활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한큐에서 오릭스로 구단 이름이 변경된 후 오릭스의 구단 직원,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오릭스 타격 코치와 수비 주루 코치, 스카우터스카우트, 구단 본부장 보좌관(구단 본부 육성 부장) 등을 역임했고 2010년에는 오릭스의 1군 수석 코치를 맡았다. 2011년에는 [[KBO 리그]] 팀인 [[SK 와이번스]]의 임시 인스트럭터(캠프 기간중에만)를 맡았고 이후 SK 와이번스의 2군 타격 코치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2011년 시즌 도중인 8월 18일에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감독의 해임에 의해 SK의 코치직에서 사임했다.
 
2012년에는 대한민국의 독립 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임시 코치(캠프 기간 중에만)를 맡았고 같은 해 3월 10일부터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스카우트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