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자이언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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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7월 25일, 주니치와의 시즌 11차전에서 승리를 기록하면서 '''정규 경기 통산 2000승'''을 달성했는데 이 경기의 승리 투수였던 [[미야타 유키노리]]는 이후 '''8시반의 남자'''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 해 20승을 거둔 미야타(구원으로 19승, 선발 투수로 1승)와 함께, 21승을 거둔 [[조노우치 구니오]], 20승을 거둔 [[나카무라 미노루]]를 묶어 '''20승 투수를 무려 3명이나 배출했는데''' 이것은 전년도인 1964년 퍼시픽 리그에서 도에이 플라이어스가 세운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고 센트럴 리그에선 현재까지 유일한 기록이다.
 
V9 기간 동안 [[일본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센트럴 리그 최우수 선수]]를 오 사다하루는 5회 수상, 나가시마는 3회 수상을 했다. 오 사다하루와 나가시마 이외에도 가네다 마사이치, 조노우치 구니오, [[호리우치 쓰네오]], [[다카하시 가즈미]] 등의 투수진과 포수 [[모리 마사아키 (야구인)|모리 마사히코]], 내야수 [[도이 쇼조]]와 [[구로에 유키노부]], 외야수 [[스에쓰구 도시미쓰]], [[시바타 이사오]], [[다카다 시게루]]를 필두로한 질 높은 야수진들이 맹활약한데다가 가와카미 감독이 마키노 수석 코치의 지도 아래 [[LA 다저스]]의 전술([[스몰 볼]])을 선진적으로 도입하여 치밀한 작전 야구를 펼친 것이 V9을 기록할 수 있었던 1등 공신이었다.
 
V9 시대의 후반기는 나가시마 등 주력 선수들의 노쇠화와 젊은 선수들의 성장 부족으로 초반보다 전반적으로는 고전하였으며 결국 1974년에는 주니치 드래건스에게 20년 만에 리그 우승 타이틀을 헌납하며 V10 달성에 실패했다. 그 해를 마지막으로 가와카미 감독이 용퇴하는데 이어 나가시마, 구로에, 모리 등 V9 시대를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 잇달아 은퇴했다. 이 시대를 마지막으로 요미우리가 일본 시리즈를 연패한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