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이치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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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음|날짜=2015-10-23}}
{{야구 선수 정보
|선수명 = 스즈키 이치로<br />{{lang|ja|鈴木一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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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 51
|선수 사진 파일명 = Ichiro Suzuki on June 18, 2015.jpg
|사진 사이즈 = 250250px
|사진 설명 = [[마이애미 말린스에서의말린스]] 시절의 스즈키 이치로 (2015년)
|국적 = 일본{{JPN}}
|생년월일 = {{JPN}} {{출생일과 나이|1973|10|22}}
|출신지 =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 군]] [[도요야마 정]]
|신장 = 180.3
|체중 = 7977.41
|수비 위치 = [[우익수]]
|투구 = 우
|타석 = 좌
|프로 입단 연도 = [[1991년]]
|드래프트 순위 = 4순위<br>[[오릭스 버펄로스|오릭스 블루웨이브]]
|첫 출장 = [[일본 야구 기구|NPB]] / [[1992년]] [[7월 11일]] <br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 [[2001년]] [[4월 2일]]
|마지막 경기 = [[일본 야구 기구|NPB]] / [[2000년]]
|획득 타이틀 =
|계약금 =
|연봉 = 200만$(2015년)[http://www.cbssports.com/mlb/salaries/top50]
|경력 = <nowiki></nowiki>
* [[오릭스 버펄로스|오릭스 블루웨이브]] (19921992년 ~ 20002000년)
* [[시애틀 매리너스]] (20012001년 ~ 2012년, 2018년 ~ 2012현재)
* [[뉴욕 양키스]] (20122012년 ~ 20142014년)
* [[마이애미 말린스]] (20152015년 ~ 20172017년)
* [[시애틀 매리너스]](2018 ~ 현재)
|대표국가 = 일본
|월드베이스볼클래식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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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끝}}
 
'''스즈키 이치로'''({{llang|ja|鈴木一朗}}, [[1973년]] [[10월 22일]] ~ ) 또는 약칭 '''이치로'''({{lang|ja|イチロー}})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의 [[일본]]의 프로 [[야구외야수]] 선수이다이다.
 
[[일본 프로 야구]] 시절 [[오릭스 버펄로스|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중심 타자로서 맹활약을 하였고 2001년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며 [[시애틀 매리너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한 적이 있다. 이치로의 활약에 힘입어 “[[아시아]]에 타자는 없다”라는 [[미국인]]들의 인식을 크게 바꾸었는데 이 때문인지 미국에서도 '''안타제조기'''({{lang|ja|安打製造機}})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외에도 자신의 이름을 표현할 때 ‘Ichiro’, ‘Ichiro Suzuki’, ‘{{lang|ja|イチロー・スズキ}}’(이치로 스즈키), ‘{{lang|ja|イチロー鈴木}}’(동음) 등이 있다. 포지션은 [[외야수]]이며 일본 프로 야구계에서 활약할 당시 성을 표기하지 않고 이름만으로 등록명을 하였는데 이유는 ‘스즈키’(鈴木)라는 성이 흔해서였다. 그리고 2013년 8월 22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 [[R. A. 디키]]를 상대로 안타를 쳐 미·일 통산 4000안타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아마추어 시절==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 군]]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는 글러브에 ‘집중’(集中)이라는 단어를 써 놓았었다고 한다. 고교 시절 일본 최고의 고교 야구 대회인 [[일본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고시엔 대회]]에 출전한 경력이 있고 1991년에는 탁월한 타격 감각을 인정 받아 프로 야구 신인 드래프트 4위로 지명을 받고 외야수로 [[오릭스 버펄로스|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한다.입단했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
===[[오릭스 버펄로스|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입단 후 2군에서 타격왕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1군 수뇌부가 변칙 타법에 대해 좋게 평가하지 않아 1군에서 확실히 자리매김하지는 못했다. 실의에 빠져 2군 생활을 하던 그는 2군 타격 코치였던 [[가와무라 겐이치로]]와 합작으로 이른바 ‘시계추 타법’으로 타격폼 개조에 들어갔다.
이후 오릭스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오기 아키라]]는 그의 천재적인 타격감을 발견해내고, 등록 이름을 당초 한자 표기로 쓰던 '''스즈키'''(鈴木)에서 가타카나 표기인 '''이치로'''({{lang|ja|イチロー}})로 바꾸게 하고 1군으로1군에 발탁한다등록됐다. 당시 1군 타격 코치였던 [[아라이 히로마사]]의 지도를 받으며 [[광각타법]](廣角打法)을 익히게 된다익혔다. 1994년 4월에는4월 정규 경기에서 1번 타자로시즌에서 맹활약을 하여 일본 신기록이 되는신기록인 69경기 연속 출루, 일본 야구계의야구 사상 처음이 되는 시즌 200안타 기록을 달성하여 최종적으로 210개(일본 기록)까지210안타까지 늘리는 등 그가 기록한 시즌 안타 갯수는 당시 일본 프로 야구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ref>이 기록은 후에 2010년 [[한신 타이거스]]의 외국인 선수선수였던 [[맷 머턴]]이 214안타를 기록하면서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ref> 그 해부터 타격 부문의 정식으로 타이틀이 된 최다 안타의 초대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퍼시픽 리그]] 신기록이 되는 타율 3할 8푼 5리신기록(이 후 2000년에 스스로 리그 기록을 경신)으로 [[일본 프로 야구 수위 타자|수위타자]]를 획득획득하였고, 타자로서는 프로 야구 사상 최연소로최연소 최우수 선수(MVP)를 손에 넣었다되었다.
[[파일:Ichiro at defence.JPG|thumb|left|200px|연습 중인 스즈키 이치로]]
1995년 시즌에는 주로 1번 타자로 활약하면서 일본 프로야구 최초로 타점왕과 도루왕 타이틀을 동시에 획득하였으며획득했으며 최다 안타, 최고 출루율 등의 타이틀도 획득하였다획득했다. 또한 1969년 [[오 사다하루]] 이후 최초로 전 이닝을 출전한 수위타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리그 3위 타이의 25개 홈런25홈런, 당시 시즌 홈런왕이었던 [[고쿠보 히로키]]와는 3개 차이이며차이였으며, 일본 야구계와야구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모두 전례가 없는 타격부문의타격 부문 타이틀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 외에 리그 2위의 장타율과 당시 리그의 기록인 시즌 18개의 사구18사구, 타이 기록이 되는기록인 시즌 경기 첫회에첫 회에 1번 타자로서 홈런5홈런을 5개를 기록기록했으며, 전년도에 자신이 기록한 69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역대 2위의2위인 67경기 연속 출루출루를 기록을 경신했다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일본 야구계의 최고 상인 [[쇼리키 마쓰타로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이듬해인 1996년에는 개막전 이후부터 전반기까지 1번 타자로 출전,1996년 시즌 중반에 열린 올스타전 제1차전에서는 첫회 선두 타자로 출전해1차전에서는번째로 던진 투구에초구 홈런(올스타전 사상 3번째, 퍼시픽 리그 선수로서는 사상 최초)을 기록했다. 제2차전에서는2차전에서는 투수로서투수로 등판, 이후에 정규 경기 후반기부터는 타순이 변경되어 3번으로 출장했다등판했다. 전반기까지는시즌 그의 타율이 단 한번도 3할 3푼을 넘지 않는 상태가 계속 되었지만, 최종적으로 3년 연속이 되는연속 타격왕을 획득, [[맹타상]]을 26회(일본 기록), 1경기 4개의 안타를4안타를 무려 8번을 기록(달성 당시에는 일본 신기록이었으며 현재는 리그 기록으로 남아 있음)했다. 9월 23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닛폰햄]]전에서는 연장 10회말에 오릭스의팀의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끝내기 2루타를 기록기록해, 전년도에 이어 팀은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리그 우승 후 [[센트럴 리그]] 우승 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1996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 그는 연장 10회에 상대 투수인 [[고노 히로후미]]로부터 결승 홈런을 날렸다쳐 냈다. 시리즈 기간 중 접전 끝에 팀은 4승 1패의 성적을 거두어 한큐 브레이브스(오릭스의 전신) 시대인 1977년 이후 19년 만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제패하면서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주로 3번 타자로서 출전하며 6월에 209타석 연속 무삼진의 일본 기록을 수립수립했고, 그 후의 닛폰햄전에서[[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닛폰햄]]전에서 상대 투수인 [[시모야나기 쓰요시]]로부터 삼진 당할 때까지 216타석 연속 무삼진을 기록했다.
1998년 3할 5푼 8리의 시즌 최고 타율로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가 되는최초 5년 연속 타격왕 획득을 달성했고,획득과 동시에 5년 연속, 통산 5번째가 되는5번째 최다 안타를 기록했다.<ref>연속 횟수와 통산 횟수 모두 퍼시픽 리그 기록이고 5년 연속은 [[나가시마 시게오]]가 6년 연속 기록한 이후 역대 2위를 기록, 통산 5회는 [[나가시마 시게오의시게오]]의 10회, [[가와카미 데쓰하루]]가 6회를 기록한 이후 역대 3위를 기록했다.</ref> 다음 해인 1999년 4월 20일 닛폰햄전에서[[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닛폰햄]]전에서 [[가네무라 사토루]]로부터 홈런을 때리면서쳐 내면서 프로 야구 사상 최고 속도가 되는 757경기 만에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고, 7월 6일 세이부전에서는[[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전에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로부터 통산 100호 홈런을100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8월 24일 닛폰햄전에서[[홋카이도 시모야나기로부터닛폰햄 오른손의파이터스|닛폰햄]]전에서 [[시모야나기 쓰요시]]로부터 투구에 맞아 부상을 당하면서 한때 시련을 겪기도 했다당했다. 시즌 103경기 출장에만 그쳤을 뿐만 아니라 1994년 개막전부터 계속되고 있던 연속 경기 출장이 [[퍼시픽 리그]] 역대 4위인 763경기로 멈추게 되었다멈췄다. 통산 6번째인 3할 4푼 3리의6번째 최고 타율을타율로 6년 연속 타격왕 타이틀을 석권했다.
2000년에는 프로 야구 역대 2위인 3할 8푼 7리의2위의 시즌 최고 타율을 기록해 7년 연속 타격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시즌 종료 후 9년간 일본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7년 연속 타격왕, 3년 연속 MVP 수상이라는 일본 프로 야구의 대기록을 달성했고, 팀의 [[일본 선수권 시리즈|일본 시리즈]] 제패를 이루는 등 일본 프로 야구를 대표하는 슈퍼 스타로 성장하는 최강 타자로 군림했다. 그는 어릴 때 좋아했던 선수 중에 일본 선수로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다오 야스시]], 미국 선수로는 [[뉴욕 양키스]]의 [[버니 윌리엄스]]를 꼽았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2001년에 메이저 리그인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하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진출 첫 해에 242개의 안타를242안타를 기록했다. 이로써 그 해 [[아메리칸 리그]]의 신인왕과 MVP를 모두 획득했고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공헌한다공헌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그에게 [[국민영예상]] 수여 의사를 타진했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2004년 5월 21일에는 미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고 8월 26일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사상 최초로 입단 후 4년 연속 200안타 기록을 달성했다. 2004년 10월 1일에는 262안타를 기록하면서 84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한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조지 시슬러]]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인 257안타)을 세웠다. 한편 일본 정부는 그에게 [[국민영예상]] 수여 의사를 타진했지만 이번에도 거절했다.
안타 수만 보고 그가 단지 타격만 잘하는 선수로 인식하기 쉬운데 그 외에도 그의 능력은 특출한 편이다. 특히 수비에서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레이저빔]]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송구능력은 메이저 리그에서도 톱수준을 자랑한다. 메이저 데뷔 초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안타의 틈을 타 1루에서 3루로 진루하던 [[테런스 롱]]을 보살시킨 플레이는플레이가 '더 스로'(The Throw)로 유명해졌다. [[조지마 겐지]]가 시애틀에 있었을 때는 그와 겐지가 ‘재페니즈 핫라인’으로 불렸다. 그리고 준족을 살린 수비범위는 아주 넓으며 특히 준족은 내야 안타와 도루로도 활용 중이다.
2003년에는 4년 동안 4천 4,4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연봉 계약을 해서하여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획득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국가 대표로 참가했다.
2008년 6월 13일에는 미일 통산 500도루를 달성했고, 7월 3일 미일 통산 1500득점 달성, 7월 29일에는 미일 통산 3000안타를 연거푸 달성했다. 9월 17일 8년 연속 200안타를 달성하는 위업을 세웠으며, 시즌 종료 후인 11월 6일에는 8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외야수 부문)했다. 2009년에는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이끄는 제2회 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하여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출전했다.
2012년 시즌 도중 7월 24일에 시애틀은[[시애틀 양키스로부터매리너스]]는 [[뉴욕 양키스]]로부터 그에게 지불해야할지불해야 할 잔여 연봉을 현금으로 지급받고 당시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 리그 투수인투수였던 [[D. J. 미첼]]과 [[대니 파쿠하]]를 그와 트레이드 하였다.
 
===[[뉴욕 양키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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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매리너스]] 복귀===
2018년에 입단하였다복귀하였다.
 
== 플레이 스타일 ==
[[파일:IchiroWBC.jpg|thumb|170px|WBC 일본 대표팀 시절의 이치로]]
* '''타격''' : 전형적인 배드볼 히터로 어떤 공이든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공을 맞추는 것에 그친다면 그가 타격 머신이라는 말을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최고 수준의 배트 스피드와 엄청난 손목 힘을 바탕으로 내외야 어디로든 공을 보낼 수 있는 환상적인 배트 컨트롤이 최고 무기이다.(메이저 리그 진출 후 실버슬러거 수상 3회, 타격왕 2회, 최다안타왕 7회)
* '''수비''' : 2001년 빅리그빅 리그 데뷔 이래 10년 연속으로 골든 글러브 수상자(외야수 부문)로 선정된 그의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이다. 특히 빠른 발과 정확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낙구 지점을 손쉽게 찾아내는 동시에 과거 고교 시절 투수로 뛰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리그 최고의 송구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 '''주루''' : 도루왕 1회 수상을 비롯 매년 30개 이상의 도루를 성공시켜 루에 있을 때마다 상대 팀에게 치명적인 무기로 인식된다. 특히 빠른 발로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타구를 때리고도 1루에서 살아남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경력==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그는 “[[올림픽]]은 아마추어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이다. 나는 프로 선수이기 때문에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단 한 차례도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던 2006년2006년에 참가하게 되고, "이번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하게 되고, "이번 WBC에서에서 싸운 상대가 '앞으로 30년은 일본과 대적하기 힘들겠구나'하고 느낄 수 있도록 이기고 싶다"는 말을 남겼는데, 대한민국 기자들이 교묘히 말을 바꾸어 "앞으로 30년은 일본을 넘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는 식의 기사를 내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30년 망언,' '입치료' 등의 불명예스런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도쿄 돔]]에서 열린 1라운드 아시아 예선에서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였는데 특히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는 그로서는 드물게 악송구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미국]]에서 열린 2라운드에서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보였으며 특히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첫회첫 회 선두 타자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4강전에서 다시 만난 대한민국전에서 3안타를 기록했으며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쿠바]]와의 결승전에서는 적시타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일본]]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결승전 이전까지 38타수 8안타 타율 .210을 기록할 정도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과의 준결승전에서 네 번째 타석까지 범타로 물러난 그는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 하나를 때려내어 부진 탈출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하였고 결국 [[대한민국]]과의 결승전에서 6타수 4안타 2타점의 대활약을 하게 된다하였다. 그가 이 경기에서 올린 2타점은 연장 10회까지 벌어진 경기 끝에 나온 결승 타점이라 더욱 의미가 컸다.
 
== 주요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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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 신인 드래프트 4위로 [[오릭스 버펄로스|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
* 1992년 : 주니어 올스타 게임 최우수 선수상 수상.
* 1994년 : 선수 등록 이름을 가타카나 표기인 '''이치로'''({{lang|ja|イチロー}})로 바꾸고,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시즌 200안타 기록을 넘음, 시즌 최종 210안타.
* 1994년 ~ 1995년 : 일본 야구계의 최고상인 [[쇼리키 마쓰타로상]]을 2년 연속 수상.
* 1994년 ~ 2000년 : 7년 연속 [[퍼시픽 리그]] 타격왕에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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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4일 : 메이저 리그 10년 연속 200안타 달성.
 
== 상세통산 정보기록 ==
=== 연도별 타격 성적 ===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right; font-size: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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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타이틀 경력 ===
==== [[일본 야구 기구|NPB]] ====
[[파일:Ichiro Suzuki.jpg|200px|thumb|이치로]]
* [[일본 프로 야구 수위 타자|수위 타자]] : 7회(1994년 ~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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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추리 베스트 나인(외야수)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
;시즌 타이틀
* 신인왕(2001년)
줄 474 ⟶ 472:
 
=== 주요 기록 ===
==== [[일본 야구 기구|NPB]] ====
===== ;첫 기록·기록 달성 경력 =====
* 첫 출장 : 1992년 7월 11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7차전([[헤이와다이 구장]]), 2회말에 [[무라카미 신이치]]를 대신해 [[좌익수]]로서 출장
* 첫 선발 출장 : 1992년 7월 12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8차전(헤이와다이 구장), 9번·[[좌익수]]로서 선발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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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산 100홈런 : 1999년 7월 6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 라이온스]] 15차전(그린 스타디움 고베), 9회말에 [[마쓰자카 다이스케]]로부터 중월 솔로 홈런 ※역대 205번째
 
===== NPB;시즌 기록 =====
* 시즌 타율 3할 8푼 이상 : 2회(1994년, 2000년)
* 시즌 타율 3할 7푼 이상 : 2회(1994년, 2000년)<ref>3할 6푼 이상에서는 타이 기록 수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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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MVP : 10회
 
===== NPB ;[[퍼시픽 리그]] 기록 =====
[[파일:Ichiro Suzuki and Barack Obama.jpg|280px|thumb|[[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시즌 안타 : 210안타(1994년) ※일본 프로 야구 역대 2위, 달성 당시에는 일본 프로 야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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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연속 퍼시픽 리그 특별 수상(1997년 ~ 2000년) ※[[노모 히데오]]와 기록
 
===== ;구단 기록 =====
* 통산 고의 사구 : 98개(1992년 ~ 2000년)
* 시즌 맹타상 : 26회(1996년) ※일본 프로 야구 역대 2위 기록이며, 달성 당시에는 일본 프로 야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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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속 경기 출장 : 763경기(1994년 4월 9일 ~ 1999년 8월 24일) ※퍼시픽 리그 역대 5위, 1994년 6월 24일부터 1996년 4월 11일까지는 212경기 연속 전이닝 출장
 
===== ;기타 =====
* 올스타전 출장 : 7회(1994년 ~ 2000년)
* 올스타전 연간 득표수 : 1,346,504표(1999년) ※퍼시픽 리그 기록이며 달성 당시에는 올스타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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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야수 최다 보살 : 2회(1995년, 1998년)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
===== MLB;시즌 기록 =====
* 시즌 안타 : 262안타(2004년) <ref>[[조지 시슬러]]의 기록을 84년 만에 경신, 안타 갯수 리그 2위를 기록한 타자와의 46개 안타 차이는 사상 최대 차이였음.</ref>
* 시즌 단타 : 225개(2004년) ※[[윌리 킬러]]의 기록을 106년 만에 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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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연속 우익수 최다 척살(2001년 ~ 2005년) ※[[팀 새먼]]과 타이 기록
 
===== MLB ;[[아메리칸 리그]] 기록 =====
* 시즌 타석 : 762타석(2004년)
* 시즌 연속 도루 성공 : 39개(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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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 글러브 수상 : 10년 연속, 통산 10회(2001년 ~ 2010년) ※모두 외야수 부문에서의 아메리칸 리그 타이 기록
 
===== MLB ;신인 기록 =====
* 신인 최다 안타 및 1년차 선수 최다 안타 : 242안타(2001년) ※조 잭슨의 기록을 90년 만에 경신
* 아메리칸 리그 신인 최다 단타 및 아메리칸 리그 1년차 선수 최다 단타 : 192개(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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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칸 리그 1년차 선수 최고 타율 : .350(2001년)
 
===== 구단 기록(;[[시애틀 매리너스]]) =====기록
* 통산 타수 : 7858타수(2001년 ~ 2012년)
* 통산 타율 : .322(2001년 ~ 2012년)
줄 663 ⟶ 661:
* 1경기 우익수 척살 갯수 : 10개(2012년 5월 3일)
 
=====; 구단 기록([[뉴욕 양키스]]) =====기록
* 데뷔 이후부터의 연속 경기 안타 : 12개(2012년 8월 5일) ※타이 기록
*
 
===== ;기타 =====
* 올스타전
** 출장 횟수 : 10회(2001년 ~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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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번호 ===
* '''51''' (1992년 ~ 2000년 [[오릭스 버펄로스|오릭스 블루웨이브]], / 2001년 ~ 2012년, 2018년 ~ 현재 [[시애틀 매리너스]], / 2015년 ~ 현재2017년 [[마이애미 말린스]])
* '''31''' (2012년 ~ 2014년 [[뉴욕 양키스]])
 
== 각주 ==
<references />
{{각주|2}}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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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seballstats |mlb= 400085 |espn= 4570 |br=s/suzukic01 |fangraphs=1101 |cube=S/ichiro-suzuki| brm=suzuki001ich}}
 
* [[{{시애틀 매리너스]](2018 ~ 현재)명단}}
{{3000 안타 클럽}}
{{명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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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살아있는 사람]]
[[분류:일본의 야구 선수]]
[[분류:오릭스 블루웨이브 선수]]
[[분류:시애틀 매리너스 선수]]
[[분류:뉴욕 양키스 선수]]
[[분류:마이애미 말린스 선수]]
[[분류: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