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성 (도요하시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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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요시다 성은 [[도요가와 강]]을 배후에 둔 성으로 이에야스는 본성으로 삼기 꺼려했다. 이에 신임이 두터운 [[사카이 다다쓰구 (1527년)|사카이 다다쓰구]]를 파견해 성을 관리하였다. 아울러 다하라 성에는 [[혼다 히로타카]]를 파견했고, 요시다 성을 중심으로 미카와 동부의 호족을 규합했다. [[1568년]] 이에야스는 [[도토미노쿠니도토미 국|도토미]]를 공략해 세를 넓혔다. 또, [[가이노쿠니|가이]]의 다케다 가문이 남하하자, 요시다 성은 북으로는 [[나가시노 성]]과 [[노다 성]]을, 동으로는 [[하마마쓰 성]], [[후타마타 성]], [[다카텐진 성]] 등의 아성(牙城)이 되었다.
 
[[1572년]] ~ [[1582년]]까지 다케다 가문과의 공방전에서 주요 거점이 되었고, [[1575년]] [[나가시노 전투]]가 있기 전까지 미카와, 도토미에서 도쿠가와 가문은 다케다 가문에 비해 열세였다. 특히 1572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에 패한 후, 다케다 군이 요시다 성 문턱까지 압박했지만, 이를 잘 막아낸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간토로 이봉되자, [[이케다 데루마사]]가 미카와 동부 4개군을 영지로 받아 입성했다. 이때, 성 및 [[조카마치|성하 마을]]을 정비했고, 인근 도요가와 강에 다리를 놓았다. 이 대대적인 공사는 11년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케다 데루마사는 동군에 가담하였고, 그 전공으로 [[1601년]] [[하리마노쿠니|하리마 국]] [[히메지 번]]으로 가증 이봉되었다. 대신 [[무사시노쿠니|무사시 국]] [[하치만야마 번]]에서 [[마쓰다이라 이에키요]]가 입성했다.
 
;[[에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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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 이후
[[1869년]](메이지 2년) [[판적봉환]]에 따라 [[요시다 번]]은 도요하시 번으로 개칭되었고, 요시다 성 또한 도요하시 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871년]](메이지 4년) 성은 [[병부성]]에서 관할하였고, [[1873년]] 실화로 성의 건조물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또, 성터에는 나고야 [[진다이]]의 도요하시 분영소가 설치되어 군부대가 주둔하였다. [[1875년]](메이지 8년) 도요하시 분영소가 [[대일본제국육군일본 제국 육군]] 보병 제18연대로 명칭이 변경되어 주둔했다.
 
[[태평양 전쟁]]후, 성의 [[산노마루]] 일부를 제외하고 [[도요하시 공원]]으로 정비되었고, [[1954년]]([[쇼와 시대|쇼와]] 29년) [[혼마루]]에 구로가네 [[야구라|망루]]가 재건되었다. 단, 구로가네 망루의 외관과 장소는 다른 장소에 지어진 것이다. 현재 성터 주변에는 관공서와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