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묘소: 문단 추가
6번째 줄:
 
그의 별장을 탐냈던 흥선군이 대원군이 된 후, 별장을 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하자, 흥선대원군은 아들 고종을 데리고 그의 별장에서 하룻밤을 묵어갔다고 한다. 임금이 머문 곳을 사저로 쓸 수 없다는 사회통념 때문에 김흥근은 별장을 흥선대원군에게 헌납하였다. 김흥근의 별장을 반강제로 압수한 흥선대원군은 별장이름을 석파정이라 바꾸고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하였다.<ref>황현, 《매천야록》, 허경진 옮김, p.20</ref><ref>이경재, 《한양이야기》 가람기획, p.239</ref>
 
그는 [[철종]]이 병석에서 사경을 헤매자, 차라리 흥선군을 왕으로 추대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ref>임용한, 《난세에 길을 찾다》 (시공출판사, 2009) 284페이지</ref> 그러나 그의 일가 친족들은 말도 안된다며 묵살해버렸다. [[김좌근]]의 집에서 때로 구걸하기도 했던 흥선군을 어떤 의도로 추대했는지 목적은 불확실하다.
 
== 묘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