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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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otthold Ephraim Lessing Kunstsammlung Uni Leipzig.jpg|thumb섬네일|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의 초상화, 안톤 그라프 1771년 작]]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년]] [[1월 22일]] ~ [[1781년]] [[2월 15일]])은 [[독일]]의 [[극작가]], [[비평가]]이다. [[계몽주의]]의 대표적 극작가·평론가로서 독일문학·연극의 근대화를 촉진시킨 시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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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베를린으로 돌아와 그림과 시의 대상묘사의 특성을 논한 예술론집 <라오콘(Laokoon)>(1766), 군인희극 <민나 폰 바른헬름>(1765년 완성, 1767년 출판 초연)을 발표, 확고한 지위를 확립했다. 〈군인의 행복〉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민나 폰 바른헬름〉은 독일 최초의 걸작 희극으로 7년전쟁 후의 정치권력이나 사회상태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파일:Gotthold Ephraim Lessing.PNG|thumb섬네일|200px| 레싱의 초상화, 가츠(Anna Rosina de Gasc) 1767/68 작, [[할버슈타트]] 글라임하우스 박물관 소재]]
[[1767년]]에 [[함부르크]]에 국민극장이 창설되자 고문으로 초빙되어 그 2년 동안의 극평 활동에서 <함부르크 연극론>을 집필되었다. 이것은 그 극장에서 상연된 희곡에 관한 논평과 독일연극의 존재양식을 논한 것으로서 독일연극의 지표가 된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이 국민극장의 경영이 실패하자 어느 고관(高官)의 사서직(司書職)을 보면서 고전 연구에 몰두, 또한 미망인 에바케니히와 47세에 최초의 결혼생활을 가졌으나 1년 만에 사별(死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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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729년 태어남]]
[[분류:1781년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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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비텐베르크 대학교 동문]]
[[분류: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
[[분류:18세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