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오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8번째 줄:
|순위 =
}}
'''나주 오씨'''(羅州 吳氏)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중랑장(中郞將) '''오언'''(吳偃)이다. 관조 오숙규(吳淑珪)는 고려 중엽 진사를 지냈다.
 
==역 사==
관조 오숙규(吳淑珪) 이후 4대의 세대(世代)가 밝혀지지 않아 '''오언'''(吳偃)을 기세조(起世祖)로 하여 계대(系代)하고 있다. 선대는 중국사람 오첨(吳瞻)으로, 신라 [[지증왕]] 때 우리나라에 정착하였다.
 
5세손인 양평(襄平) 오자치(吳自治)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나성군(羅城君. 나주의 고호)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나주시|나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그래서 나주 오씨를 금성 오씨라 부르는 후손들도 있다.
 
== 고려 왕실과 인척관계 ==
줄 14 ⟶ 21:
 
== 인물 ==
===고 려===
* 오언(吳偃) : 고려조에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했다.
* 오계진(吳季眞) 고려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고,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추증되었다.
* 오탁진(吳卓眞) : 호는 송은(松隱) 고려때 사마양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며, 학행으로 천거되어 정당문학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 오중달(吳仲達) : 자(字)는 가원(可遠), 호(號)는 남강(南江).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정당문학을 거쳐 보문각·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했다.
 
===조 선===
* 오자치(吳自治, ? ~ ?) : 시조 오언의 현손. [[1467년]] (세조 13) [[이시애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정충출기 적개공신(精忠出氣 敵愾功臣)에 책록되고, 병조참판을 지냈다. 이후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졌다가 노부(老父)의 봉양을 이유로 은퇴했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1476년]] (성종 7) 제작된 공신도상 초상은 보물 제1190호로 지정되었다.
* 오겸(吳謙, [[1496년]] ~ [[1582년]]) : 오자치의 손자. 자는 경부(敬夫),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1532년]](중종 27) 별시(別試)에 급제하여 [[1546년]](명종 원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550년]](명종 5)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지고, 호조참판, 예조판서, 판의금부사를 거쳐 [[1571년]](선조 4) 좌찬성(左贊成)으로 지춘추관사가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우의정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