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
3월 21일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 허위 작성 되돌림 |
||
5번째 줄:
|별명 = 센돌(強乭), 마왕(魔王), 삼석(三石)
|출생일 = {{출생일과 만나이|1983|3|2}}
|출생지 = [[대한민국]] [[
|사범 = [[권갑용]]
|제자 =
20번째 줄:
{{메달 끝}}
'''이세돌'''(李世[[한국제 한자|乭]], [[1983년]] [[3월 2일]] ~ , [[
== 이름 ==
26번째 줄:
== 생애 ==
그의 아버지 이수오는 [[
이세돌은 [[조훈현]], [[이창호 (바둑 기사)|이창호]], [[조혜연]], [[최철한]]에 이어 역대 최연소 5위(12세 4개월)로 입단하였고, 그 뒤로 2단이 되는 데에 3년이 걸렸다. 1999년에 3단이 된 뒤로 크게 활약하기 시작, 2000년에는 32연승을 거두며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했다. 특히 2002년에 3단으로서 제15회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1992년 [[이창호 (바둑 기사)|이창호]]가 동양증권배 우승 당시 세웠던 최저단(5단) 세계대회 제패 기록을 경신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이세돌 3단 후지쯔배 우승… 사상 최저단 세계대회 제패 기염|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113872}}(국민일보, 2002-08-04)</ref> [[한국기원]]이 2003년에 승단 규칙을 개정한 뒤, 유례가 없는 속도로 9단까지 승단하였다. 국제 기전에서 18회 우승하는 등, 21세기 초입부터 현재까지 전세계 최고 수준의 기사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어릴 때 성장한 곳이 [[
한때 [[프로기사회]]와 마찰이 발생하여, 2009년 6월 30일부터 2010년 12월 31일까지의 18개월 휴직계를 제출하였으나, 휴직 6개월여 만인 2010년 1월 11일 한국기원이 복직조건으로 내건 조건인 소속기사 내규의 준수, 중국리그 수입 일부를 기사회 기금으로 내는 문제의 수락, 공동저작물인 기보저작권의 사용 권한을 기사회에 위임하는 것 등에 대해 한국기원에 방문하여 자필 서명하면서 휴직을 끝냈다.
288번째 줄:
[[분류:살아있는 사람]]
[[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분류:
[[분류:아시안 게임 바둑 메달리스트]]
[[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