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양부대부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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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804년]](순조 4) [[2월 19일]] 학생 최수창과 그의 부인 광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최씨이며, [[고려]]시대에 [[상장군]]을 지낸 최순작(崔純爵)의 후손으로, [[고려]]말과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개국원종공신 [[좌참찬]]을 지낸 평도공(平度公) 죽정 [[최유경]](竹亭 崔有慶)이 그녀의 직계 조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은 몰락해서 벼슬이 없었고, 친정아버지 최수창의 증 의정부영의정의 직책은 사후 남편 이광의 서자 [[조선 철종|원범]]이 즉위한 뒤에 추증된 벼슬이었다. 친정어머니 광주이씨는 가선대부를 지낸 이봉의(李鳳儀)의 딸이다.
 
[[김좌근]]이 쓴 묘비명에 의하면 유년시절 친정부모가 병이 들자 음식도 마다하고 손수 친정부모의 병수발을 들었다 하며, 은언군의 서자 이광과 결혼하였지만 집안은 가난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늘 평안히 여겼다 한다.
 
전계대원군 이광의 본부인으로 그가 죽은 뒤에 이씨, 염씨와 재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일 두 첩실과 같이 생활한 것이 알려졌다. 남편의 첩 이씨와 염씨는 그의 생전에 들어왔으며 후일 철종실록의 철종 행장에 완양, 용성 두 부인을 모두 섬겼다는 내용이 1970년대에 알려지게 되었다. 남편 이광은 [[은언군]] 사건과 [[상계군]] 추대 사건, [[상산군부인]] 송씨와 상계군부인 신씨의 사건에 [[연좌]]된데다가 [[은언군]]의 서자라서 작위와 품계를 받지 못했고, 최씨 역시 내명부 직첩을 받지 못했다. [[1830년]] 순조의 특명으로 은언군 가문의 사람들을 석방할 때 남편 이광과 함께 도성에 들어와 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