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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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민족대표 33인]] 중 [[최린]]과 [[박희도 (1889년)|박희도]], [[정춘수]]가 추후에 구체적인 친일 행위에 가담하여 변절한데 비해, 길선주는 무죄를 선고받았기에 건국공로를독립운동 관련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못받았다. 그러나 1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사실이 이후 확인됨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f>{{뉴스 인용
*최근 길선주가 1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사실이 추가로 확인됨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고 길선주 목사 90년 만에 애국지사 되다
|url=http://www.kukinews.com/mission/article/view.asp?page=1&gCode=kmis&arcid=0921384032&code=231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