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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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한 이유 ==
홍경래의 난은 많은 준비와 세력을 등에 업은 대규모 반란이었으나, 진행 중 몇 전투에서 패하여 기세가 수그러들자 빠르게 진압되어갔다. 이는 홍경래 세력이 같은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각자 다른 이해를 가지고 모여든 세력이었던 것이 이유이다.
 
홍경래의 계획이 일부 어그러진 것 또한 실패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다. [[박종일]](朴鍾一)로 하여금 한양에서 난을 일으켜 중앙의 혼란을 꾀하였으나 주살되고, 창성(昌成)·강계(江界)·초산(楚山)·위원(渭原) 등지의 포수(砲手)들의 내원을 기대하였으나, 모두 체포되었으며, 점령한 8읍이 함락되어 정주성이 고립되고, 붙들린 포수들이 정주성 공격을 도왔으며, 호병(胡兵, [[청나라]] 군대)을 청하려 하였으나 부하의 번의로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