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서는 원효와 만나기 전에 [[김흠운]](金歆運)에게 시집 갔으나 [[김흠운]]이 [[백제655년]]와전투에서백제의 조천성(助川城, 현재의 [[옥천]])을 공략하다 전사하여 일찍 과부가 되었으며 소생으로 두 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둘째 딸이 자신의 누이이자 [[신라]] 30대 국왕인 [[문무왕|김법민]](金法敏)의 큰 아들인 [[소명태자]]와 혼인하였으나 [[소명태자]]가 일찍 사망하여 시동생인 [[정명태자]](政明太子)와 재혼하였으며 그 후 [[정명태자]]는 훗날 31대 국왕인 [[신문왕]]이며 그녀는 [[신문왕]]의 비인 [[신목왕후]](神穆王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