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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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년]], 당시 황태손이던 때에 조부인 [[당 현종|현종 이융기]]가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을 피하고 서쪽으로 도망가자, 아버지인 황태자 이형과 동행하였다. 조부 이융기가 이형에게 제위를 물려주자, 이예는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얼마 안 있어 수도 [[장안]](長安)과 부수도 [[낙양]](洛陽)을 되찾았다. [[762년]]에 환관인 [[이보국]]이 황후 장씨를 시해하고 얼마 안 있어, 부친 이형이 사망하였다.
 
곧바로 이예는 황제에 올랐고, 그 이듬해에 7년 동안 당나라를 어지럽힌 안·사의 난은 결국 진압되었다. 하지만 반란은 끊이지 않고 곳곳에서 발발했다. 또한 그는 [[티베트 고원]]의 [[토번]](吐番) 왕조에게 비단을 공납하던 것을 중지해, 당시 토번의 왕이던 [[트리송 데첸|치쏭데찬]](赤松德贊)의 분노를 이끌어내 [[763년]], 토번의 장수 [[다짜뤼공]](達扎樂宮)이 20만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 장안을 11일간 점령당하기도 하는 엄청난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더군다나 이예는 불교에 심취하여, 불교 사찰에 많은 토지와 면세 혜택을 주기도 하여 당의 재정이 한층 더 악화되었다.
 
[[779년]],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생전 존호는 보응원성문무효황제(寶應元聖文武孝皇帝)이고, 시호는 대종 예문효무황제(代宗 睿文孝武皇帝)이며, 능호는 원릉(元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