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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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
[[1865년]] 봄, 남부군이 항복하면서 미국의 노예 제도는 사실상 끝이 났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 선언]]》에서 남부군 소속 지역의 노예들을 해방시킬 것을 선포했고, 이로 인해 남부의 모든 노예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멕시코 접경지대와 남부 지역의 북부군 관할 구역 노예들은 [httphttps://en.wikipedia.org/wiki/State_action 주정부 시행안(state action)] 나 [[1865년]] [[12월 6일]] 비준된 [httphttps://en.wikipedia.org/wiki/Thirteenth_Amendment_to_the_United_States_Constitution 수정 헌법 제13조] 로 하여금 해방되었다. 약 400만 명의 흑인 노예가 [[1861년]]부터 [[1865년]] 사이에 해방되었다.
 
북부의 완전한 복구 작업은 [http://timeline.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8j3383a 재건 시대] 라고 알려진, 전후 상당히 혼란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전쟁으로 인해 103만 명의 사상자(당시 인구의 3%)가 발생했고, 사상자 중 62만 명은 군인이었으며 그 가운데 2/3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남북 전쟁은 미국이 지금껏 참여한 모든 전쟁에서의 사망자 수와 맞먹는 수많은 미국인들의 죽음을 초래했다. 전쟁을 유발한 원인과 그 타당성 여부는 물론이고, 남북 전쟁이라는 그 명칭 자체도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되는 소재이다. [[1860년대]]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13~43세 백인 남자 전체의 8%가 전쟁으로 인해 사망했고, 이 수치는 북부 인구의 6%, 남부의 18%나 된다. 약 56,000명의 군인이 남북 전쟁 중 감옥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