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모즐리 (물리학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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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싯 주]] [[웨이머스]]에서 출생으로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의 트리니티칼리지를 졸업하고 1910년 [[맨체스터 대학교]] 특별연구원이 되어 러더퍼드의 지도하에 연구활동을 했다.
 
[[어니스트 러더퍼드]] 밑에서 [[방사능]]을 연구하다가 [[X선]] 연구로 방향을 바꾸었는데 [[1913년]]에는 각 원소의 고유 X선을 측정하여 '''모즐리의 법칙'''을 발견하여발견하고 원소의 분석에 획기적인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X선 분광학의 개척자가 되었다.
연구 초기에는 라듐B 및 라듐C의 원자 1개의 붕괴에 의해서 방출되는 베타입자의 평균 개수의 측정 등에 관한 실험을 했다. 그러나 원자에 전자빔을 발사하는 방법으로 원소를 연구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러더퍼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찰스다윈의 손자인 C.G.다윈과 협력하여 X선 산란 연구를 시작했다.
전자빔을 원자에 발사하면 원자 내부의 전자가 방출되고, 고에너지의 전자가 바닥상태로 전이하면서 고에너지의 X선을 방출한다. 모즐리는 이 X선의 파장과 원자핵 속의 양성자 수, 그 원자의 원자 번호 사이의 관계를 도출하여 "모즐리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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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와 모즐리 주기율표의 차이점'''
 
멘델레예프와 모즐리 주기율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원자번호를 정렬하는 기준에 있다. 멘델레예프는 원자량을 기준으로 원자번호를 정했지만, 모즐리는 이후에 원자의 양성자 수를 기준으로 원자번호를 정립한다정립했.
그 대표적인 예로 코발트와 니켈이 있다. 멘델레예프의 기준에 따르면 코발트의 원자량이 니켈의 원자량에 비해 약간 크기 때문에 니켈이 27번 원소가 되고 코발트가 28번 원소가 된다. 그렇지만 모즐리의 기준인 양성자 수에 따라 원자번호를 정하면 코발트가 27번 원소가 되고 니켈이 28번 원소가 된다. 즉, 모즐리의 객관적인 원자번호 측정법 덕분에 주기율표를 올바르게 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3.모즐리 주기율표의 한계'''
 
모즐리는 X선 스펙트럼으로부터의 실험적 기반을 바탕으로 주기율표를 완성하였다. 그렇지만 모즐리는 43, 61, 72, 75번 원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살아있을 동안은 그의 주기율표에서 빈 공간이 채워지지 못했지만, 그가 죽고 난 다음 많은 과학자들은 그에게 경의의 의미로 그가 찾아내지 못한 원소들을 찾는데 온 힘을 다했다. 결국 네 원소 모두 발견되었는데, 원자번호 순으로 technetium, promethium, hafnium, rhenium이다. 43번 원소와 61번 원소는 인공 핵반응 생성물과 우라늄 핵분열 생성물에서 분리 및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방사성 원소로 자연계에서는 극미량 존재한다. 72번 원소의 경우 처음에는 희토류 원소의 하나일 것으로 짐작하고 희토류 광석에서 이를 찾고자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덴마크의 닐스 보어(Niels Bohr, 1883~1962) 등 몇 명의 과학자들이 72번 원소는 희토류 원소가 아니고 지르코늄과 비슷한 전이금속일 것으로 제안하였다. 이런 제안에 힘입어, 보어의 조수였던 네덜란드 출신 물리학자 코스터(Dirk Coster, 1889~1950)와 헝가리 출신 화학자 헤베시(Georg Karl von Hevesy, 1889~1966)가 1923년에 지르코늄 광석인 노르웨이산 지르콘에서 X-선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마침내 72번 원소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75번 원소인 레늄은 하프늄을 발견한지 2년 후에 마침내 발견되었다.섹 스
 
== 참고 문헌( ==
샘킨(2011), 사라진 스푼, 해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