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부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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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바버라 피어스<br />Barbara Pierce
|출생일= {{출생일|1925|6|8}}
|출생지= [[미국]]{{USA}} [[뉴욕]] [[플러싱 (퀸스)|플러싱]]
|사망일= {{사망일과 나이|2018|4|17|1925|6|8}}
|사망지= {{USA}} [[텍사스 주]] [[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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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부시'''(Barbara Bush, [[1925년]] [[6월 8일]] ~ [[2018년]] [[4월 17일]])는 [[미국]]의 [[미국의 대통령|제41대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의 부인이다. 결혼전 이름은 바버라 피어스(Barbara Pierce)였고 1989년부터[[1989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1993년]]까지 [[영부인]] 직을 수행했다.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의 모친이기도 하다.
 
== 초기 생애 ==
[[뉴욕]] [[퀸스]]의 [[플러싱 (퀸스)|플러싱]]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모친 폴린 피어스는 [[오하이오 주]] [[대법원]] [[재판관]]의 딸이었고, 가든 클럽 어브 아메리카의 의장으로서 환경 노력의 성과에 봉납되었다.
[[뉴욕 주]]의 명문인 피어스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제14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피어스]]는 그의 증조부의 먼 친척이다. [[1945년]] [[조지 H. W. 부시]]와 결혼했다. [[1946년]] 장남 [[조지 W. 부시]]를 낳았으며, 그 후 남편과 함께 [[텍사스 주]] [[미들랜드 (텍사스 주)|미들랜드]]로 이주했다. 주부로 있으면서 남편의 사업과 정치활동을 도왔다. [[1981년]]에는 남편이 [[부통령]]에 취임했고, [[1988년]]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1989년]]부터 [[미국]]의 영부인이 되었다. 남편 [[조지 H. W. 부시]]가 [[1992년]] 재선에 실패하자, 부부는 [[1993년]] 은퇴하여 [[텍사스 주]]로 돌아왔다. 남편과 아들을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든 여성으로 부러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부친 마빈 피어스는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의 먼 자손이었고 잘 알려진 [[잡지]] 매콜스와 레드북을 발간한 매콜 주식회사의 사장이었다. [[뉴욕 주]] 라이의 변두리 공동체의 [[미국 성공회|성공회]] 집안에서 자라온 바버라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발랄하고 재치있는 소녀였다. 그녀는 [[1940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찰스턴]]에 있는 기숙사 학교 애슐리홀로 가기 전에 라이의 밀턴 공립 학교와 라이 컨트리 데이 학교에서 초기 교육을 받았다.
2018년 4월 17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향년 92세의 나이로 노환으로 사망했다.<ref name="yonhapnews_2018-04-18">{{뉴스 인용 | 저자 = 강건택 | 날짜 = 2018-04-18 | 제목 =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영부인' 바버라 부시 별세…향년 92세(종합) |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4/18/0200000000AKR20180418032152009.HTML | 뉴스 = 연합뉴스 | 위치 = 서울 | 확인날짜 = 2018-04-18 | 보존url = http://archive.is/OGzX1 | 보존날짜 = 2018-04-18 | 깨진링크 = }}</ref><ref name="cnn_2018-04-17">{{뉴스 인용 | 언어 = 영어 | 저자1 = John Crawley | 저자2 = Jamie Gangel | 날짜 = 2018-04-17 | 제목 = Barbara Bush, Republican matriarch and former first lady, dies at 92 | url = https://edition.cnn.com/2018/04/17/politics/barbara-bush-dies/index.html | 뉴스 = CNN | 확인날짜 = 2018-04-18 | 보존url = http://archive.is/q6o5s | 보존날짜 = 2018-04-18 | 깨진링크 = }}</ref>
 
== 조지 H. W. 부시와 가족 ==
[[파일:Entire Bush family.jpg|thumb|left|1960년대 중반의 부시 가족. 뒷줄 중앙이 바버라 여사]]
[[1941년]] [[크리스마스]] 휴식에 기숙사 학교로부터 고향에 있는 동안 16세의 바버라는 [[매사추세츠 주]] 앤도버에서 필립스 아카데미의 17세 선배인 훗날의 남편 [[조지 H. W. 부시]]를 만났다. 조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해군]]의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였다. 둘은 [[1945년]] [[1월]]에 결혼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새롭게 결혼한 부시 부부는 조지가 [[예일 대학교]]에서 신입생으로 등록한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으로 이주하였다. 부부의 첫 자식, 또한 훗날의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1946년]]에 태어났다. 조지 1세는 [[1948년]] 대학을 졸업한 후 [[석유]] 비지니스에 들어갔고 가족을 [[텍사스 주]]와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시켰다. [[1949년]] 바버라의 부친이 [[자동차]] 사고에 연루되어 모친이 사망한 일이 생겼다. 그녀가 [[임신]]한 이래 바버라는 캘리포니아 주로부터 모친의 [[장례식]]으로 여행을 떠나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고 사건은 오래간 상처를 남겼다. 3달 후, 부시 부부는 둘째 자식을 두었는 데 바버라의 사망한 모친을 명예를 가려 폴린 로빈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1953년]] [[10월]] "로빈"이라고 별명이 붙은 이 딸이 [[백혈병]]으로 사망하여 부시 부부를 압도하였다.
 
3번째 자식 [[젭 부시|젭]]은 로빈의 진단의 겨우 전에 태어났다. 바버라는 2명의 아들을 더 두었는 데 닐 맬런 부시(1955년생)와 마빈 피어스 부시(1956년)이다. [[1959년]] [[8월]]에는 막내 딸 도로시가 태어났다. 바버라 여사는 [[YMCA]] 같은 기구들을 지원하는 동안 다음 2개의 10년 세월을 아내와 모친으로서 봉납하였다. 부시 부부는 결국적으로 조지 1세가 석유 산업에서 성공을 찾은 텍사스 주 [[미들랜드 (텍사스 주)|미들랜드]]에 정착하였다. 바버라는 또한 남편의 선거 운동에 참가하면서 [[공화당 (미국)|공화당]] 정치에서 그의 싹트기 시작한 경력을 도우기도 하였다. [[1966년]] 그녀의 남편은 처음으로 [[미국 의회]]에 선출되었고 이듬해 부시 가족은 [[워싱턴 D. C.]]로 이주하였다.
 
[[파일:George and Barbara Bush in Houston, Texas on the night which George Bush was elected to Congress - NARA - 186373.tif|thumb|right|[[조지 H. W. 부시|부시]]가 [[1966년]] [[미국 의회]]에 선출될 때 [[휴스턴]]에서 축하를 벌이는 부시 부부]]
== 정치적 부인 ==
[[1970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조지 H. W. 부시에게 [[미국 하원|하원]]의 의석을 포기하고 텍사스 주에서 [[미국 상원|상원]]을 위하여 나가는 데 의문하였다. 부시는 텍사스 주 상원 선거에서 로이드 벤트슨에게 패하였다. 조지가 성공적으로 닉슨이 자신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하는 데 압력을 가한 후 부시 가족은 뉴욕의 유명한 월도프 애스터리아 호텔로 이주해 들어갔다. 거기서 바버라 여사의 사회적 여유와 환대에서 실력은 그녀를 외국인 고위 인사들과 인기있게 만들었다.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국가를 끌어당기면서 닉슨 대통령은 조지 H. W. 부시에게 유엔 대사직을 떠나고 공화국 국립 위원회를 차지하도록 의문하였다. 바버라는 닉슨 행정부가 남편의 경력을 손해시킬 것 같은 근심에 놓였다. [[1974년]] [[8월]] 닉슨은 망신에 사임을 하고 [[제럴드 포드]]가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몇몇의 외교적 지위들이 주어진 조지는 [[중화인민공화국|중공]]에 있는 미국 연락국의 국장으로 지위를 선택하였다. 중공에서 바버라 여사는 문화에서 자신을 몰두시키고 언어를 공부하였으나 가족이 거기 머무는 데 오래가지 않았다. [[1975년]] 포드 대통령은 조지에게 돌아와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 전쟁]]에 그 연루를 위하여 가열된 [[미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의 국장이 되는 데 의문하였다. 바버라 여사는 또다시 그 지위가 정치에서 남편의 미래를 방해할 수 있는 근심에 놓이기 시작하였다.
 
중앙정보부에서 조지의 복무와 자식들의 멀리 학교에 있는 동안 바버라는 [[우울증]]에 빠졌다. 그녀는 자신의 컨디션을 자신에 두고 의료적 도움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경험은 그녀에게 정신적 건강 논점을 위한 거대한 이해와 동정심을 주었다. 조지가 [[1979년]] [[백악관]]을 위하여 나가는 데 결정할 때 바버라는 투표인들과 종사하는 선거 운동에 돌아왔다. 말기에 부시 진영은 [[로널드 레이건]]에 의하여 얻어진 추진력을 차지할 수 없었으나 후보직은 [[1980년]] 압도적 승리를 거둔 공화당의 공천 후보에 조지를 레이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선택하였다.
 
[[파일:Thatchers and Bushes at Chequers.jpg|thumb|left|[[마거릿 대처]] 내외와 함께 한 부시 부통령 부부]]
== 영부인과 그 범위를 넘어서 ==
정치적 랭킹을 지나 떠오른 후, 조지 H. W. 부시는 [[1981년]] [[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아래 부통령이 되었다. 세컨드 레이디로서 바버라 여사는 해외로 미국의 이익들을 대표하는 데 수억 마일을 달리고 외국의 국가 원수들과 오래가는 우정을 안출하였다. 이 시기 동안에 그녀의 인기는 솟아올랐고 아들 닐의 독서 장애에 의하여 일부에서 동기가 주어진 그녀는 거기에 자신을 봉납하였다. 그녀는 어린이와 성인의 [[문맹]]의 논점에 자신을 교육시키는 것에 대하여 세우고 이 원인을 위하여 주창하는 몇몇의 기구들과 활동적으로 연루있게 되었다.
 
레이건의 부통령으로서 2개의 기간들을 지낸 후, 조지 H. W. 부시는 대통령직을 위하여 두번째로 나가는 데 착수하였다. 그는 곤란한 선거 운동을 나가 결국적으로 자신의 [[민주당 (미국)|민주당]] 상대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를 꺾었다. [[1989년]] [[1월]] 그는 미국의 41대 대통령으로서 선서하였다. 영부인으로서 바버라 여사는 남편의 취임식 무도회에서 신을 29 달러의 [[구두]] 한짝을 매입한 자신의 전임자 [[낸시 레이건]] 여사보다 더욱 적은 중요성을 유행에 놓았다. 자신의 다수적의 끈 목걸이를 걸기로 알려진 영부인 바버라 여사는 저명한 패션 디자이너 아널드 스카시가 그녀 자신의 실습적 스타일을 이애한 이유로 그녀의 공식적 의상을 위하여 그에게 방향을 바꾸었다.
 
[[파일:Barbara Bush reading with chlidren 30590.jpg|thumb|right|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바버라 여사]]
백악관으로 이주한 동년에 바버라 여사는 [[그레이브스병]]과 진단되었다. 그녀는 컨디션의 영향들을 적게 하는 데 [[방사선]] 치료를 통하였으나 바버라 여사의 진단은 공공적 서비스로 그녀의 위임을 단념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그녀는 미국 전역을 가로질러 책을 읽는 실력들을 부모와 어린이들 둘다에게 가르치는 데 성원하는 기구 바버라 부시 식자 재단을 시작하였다.
 
백악관에서 부시의 세월은 진행 중의 국제적 소란은 물론 [[냉전]]의 종식과 함께 세계에서 승리적인 변화를 볼 수 있었다. [[1989년]] 미국은 [[파나마]]를 침공하여 독재가 [[마누엘 노리에가]]를 체포하였다. [[1990년]] [[8월]] 부시 대통령은 사막의 폭풍 작전을 발포하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맞서는 데 34개의 연합국을 집합시키기 시작하였다. 그해 [[11월]] 부시 부부는 작전에 복무하는 수천명의 미군을 방문하는 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보냈다.
 
[[파일:Mrs. Bush and Raisa Gorbachev deliver Commencement Addresses at Wellesley College - NARA - 186412.tif|thumb|left|웰즐리 대학교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바초프]]의 부인 라이사 여사와 함께]]
[[1991년]] [[1월]]에 발포된 [[걸프 전쟁]]은 연합군과 부시 행정부의 승리로서 환호하며 맞아졌다. 바버라 여사는 남편의 인기와 군인들이 따뜻한 환영으로 귀국하면서 2번째 기간이 치솟는 번영을 보아왔다. [[1992년]] 미국은 경제 위기를 겪고 부시 행정부를 위한 성원은 폭락하였다. 그 동안에 젊은 [[빌 클린턴]]이 투표인들의 상상과 선거 인단에서 추진력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였다. 그해 [[11월]] 클린턴이 부시를 꺾고 [[1993년]] [[1월]] 부시 부부는 워싱턴 D. C.에 작별하고 텍사스 주로 돌아왔다.
 
자신의 백악관 세월 후 바버라 여사는 공공적 서비스로 자신의 봉납을 다시 2배로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위탁을 식자 프로젝트들로 지속적으로 하여 원인을 위하여 수백만 달러를 모았으나 아들 조지 W.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로서 그의 2번째 기간을 이기고 젭이 [[플로리다 주]]지사로 선출되면서 [[1998년]] 주요 정치적 복귀를 만든 자신의 가족과 함께 더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가족 유산 ==
[[2000년]] 조지 W. 부시는 자신의 부친의 선례를 따르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004년]] 그는 2번째 기간을 위하여 재선되었다. 또한 바버라 여사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동안 [[밋 롬니]]의 선거 운동과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입찰을 위하여 성원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텍사스 주 휴스턴과 [[메인 주]] 케네벙크포트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남편과 살아 온 전 영부인은 아메리케어스를 위한 특사를 지내는 동안 바버라 부시 식자 재단에서 활동적으로 남았다.
 
=== 손자, 손녀들 ===
바버라 부시 여사는 쌍둥이 손녀 [[바버라 피어스 부시|바버라]]와 [[제나 부시|제나]](조지 W.와 [[로라 부시]]로부터), 조지, 노엘과 존 엘리스(젭 부시로부터)와 로런(닐 부시로부터)을 포함한 17명의 손자, 손녀들을 두었다.
 
== 이후의 세월과 사망 ==
[[2017년]] [[1월 14일]] 바버라의 남편 조지는 [[폐렴]]으로부터 막아진 급성의 [[호흡]] 문제를 겪어 입원하였다. 4일 후, 바버라 여사는 [[피로]]와 [[기침]]을 겪은 후 입원하고 [[1월 23일]]에 퇴원하였다. 남편은 [[1월 30일]]에 퇴원하였으며 며칠 후, 고향 휴스턴에서 원상복귀한 부시 부부는 [[NRG 스타디움]]에서 열린 [[수퍼볼]] 에 참석하였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전 대통령이 동전을 던질 때 부부는 관중들에 의하여 응원을 받았다.
 
2018년 4월 17일 [[텍사스주2018년]] [[휴스턴4월 17일]]에서 휴스턴에서 향년 92세의 나이로나이에 노환으로 사망했다.<ref name="yonhapnews_2018-04-18">{{뉴스 인용 | 저자 = 강건택 | 날짜 = 2018-04-18 | 제목 =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영부인' 바버라 부시 별세…향년 92세(종합) |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4/18/0200000000AKR20180418032152009.HTML | 뉴스 = 연합뉴스 | 위치 = 서울 | 확인날짜 = 2018-04-18 | 보존url = http://archive.is/OGzX1 | 보존날짜 = 2018-04-18 | 깨진링크 = }}</ref><ref name="cnn_2018-04-17">{{뉴스 인용 | 언어 = 영어 | 저자1 = John Crawley | 저자2 = Jamie Gangel | 날짜 = 2018-04-17 | 제목 = Barbara Bush, Republican matriarch and former first lady, dies at 92 | url = https://edition.cnn.com/2018/04/17/politics/barbara-bush-dies/index.html | 뉴스 = CNN | 확인날짜 = 2018-04-18 | 보존url = http://archive.is/q6o5s | 보존날짜 = 2018-04-18 | 깨진링크 = }}</ref>
 
== 각주 ==
 
{{전거 통제}}
{{토막글|미국 사람}}
 
{{기본정렬:부시, 바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