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카르스텐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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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2 = [[아네마리 렝거]]
|후임2 = [[리하르트 슈튀클렌]]
|직책3 = [[연방수상부연방총리청 (독일)|연방수상부장연방총리청장]]
|수상3 =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임기3 = 1967년–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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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카르스텐스는 고사포 [[포병|포병대]] [[소위]]로 근무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브레멘에서 [[변호사]]가 되었고 [[1955년]] [[기독교 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1960년]]에 [[외무부]]의 서기로서 정부에 들어갔다. 같은 해, [[쾰른 대학교]]의 [[국제법]], [[공법]] [[교수]]로 임명되었다.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대연합 정부 시기에 [[1968년]] [[연방수상부연방총리청 (독일)|연방수상부장연방총리청장]]을 지내다가 [[국방부]]의 서기를 지냈다.
 
[[1972년]]에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1979년]]까지 그 직에 있었다. [[1973년]] [[5월]]부터 [[1976년]] [[10월]]까지 기독교 민주연합/기독교 사회연합 의회 단체의 의장을 지내면서, 독일 사회에서 좌익 경향의 비평에 솔직한 말을 하였고 기독교 사회연합의 좌익 과격주의자들에 대한 너무 연한 정책을 고발하였다. 그는 또한 작가 [[하인리히 뵐]]을 좌익 테러의 후원자로서 비난하기로 유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