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왕 (백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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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백제의 역대 국왕|백제의 30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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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武王, ? ~ [[641년]], 재위 : [[600년]] ~ [[641년]] [[음력 3월]]) 은 [[백제]]의 제30대 [[군주|국왕]]이다. 성은 부여(扶餘), [[휘]]는 장(璋), 아명은 [[서동]](薯童) 혹은 일기사덕(一耆篩德)이다. [[백제 법왕|법왕]](法王)의 아들이라는 설과 [[백제 위덕왕|위덕왕]]의 아들이라는아들(서자)이라는 설도 존재한다.<ref><삼국사기> 제27권 백제본기 제5(三國史記 卷第二十七 百濟本紀 第五)</ref> 재위 기간 신라에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는 한편 동아시아의 양대 세력인 고구려와 수나라가 각축전을 벌일 때, 세력 균형과 중립외교를 통해 양쪽의 대결을 이용한 실리정책을 펼쳤다.
 
이와 더불어 왕권 강화와 왕권의 건재를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대규모 역사(役事)를 단행하였다. [[630년]] 사비궁(泗沘宮)을 중수하였으며 익산을 중시해 이 곳에 별도(別都)를 경영하고, 장차 천도(遷都)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또한 백제의 대귀족 출신 정실 왕후 사택씨(沙宅氏) 세력의 보시로 막대한 경비와 시간을 들여 익산에 동방 최대 규모의 [[익산 미륵사지|미륵사]](彌勒寺)를 창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