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릉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봇: 문단 이름 변경 (바깥 고리 → 외부 링크) |
잔글 봇: 특정 http → https 변환 |
||
3번째 줄:
== 개요 ==
황해북도 개풍군 남포리 영안성에 있는 [[고려 태조|태조 왕건]]의 부모 세조 왕륭과 위숙왕후 한씨의 무덤이다.<ref name="han">[
1217년(고종 4년) 음력 3월 세조의 [[재궁]]을 임시로 [[봉은사]]로 옮겼다가<ref>《고려사》권22〈세가〉권22 - 고종 4년 - 3월 - 세조의 관을 봉은사로 옮기다</ref> 1276년(충렬왕 2년) 음력 9월 다시 창릉으로 이장하였다.<ref>《고려사》권28〈세가〉권28 - 충렬왕 2년 - 9월 - 세조와 태조의 재궁을 창릉과 현릉에 이장하다</ref> 한편 1365년(공민왕 14년) 음력 3월에는 왜구들이 창릉에 들어가 세조의 어진을 탈취하였으며,<ref>《고려사》권41〈세가〉권41 - 공민왕 14년 - 3월 - 왜적이 세조의 영정을 탈취하다</ref> 열흘 후에 영도첨의 이공수를 시켜 위패를 새로 봉안하게 하였다.<ref>《고려사》권41〈세가〉권41 - 공민왕 14년 - 3월 - 창릉에 세조 위패를 새로 봉인하다</ref> 이어 1392년(공양왕 4년) 음력 3월에는 창릉을 수리하였다.<ref>《고려사》권46〈세가〉권46 - 공양왕 4년 - 3월 - 창릉을 수리하다</ref> 창릉에는 능의 수비를 위해 산직장상 2명을 두었다.<ref>《고려사》권83〈지〉권37 - 병3 - 위숙군 -각종 궁과 문을 수비하는 위숙군의 종류와 액수</r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