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문정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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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金坵, [[1211년]]~[[1278년]] [[10월 14일]]([[음력 9월 26일]]))는 [[고려]]의 [[문신 (관료)|문신]]이다.<ref>{{서적 인용|저자1=이응백|저자2=김원경|저자3=김선풍|제목=국어국문학자료사전|장=김구|url=http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88714&cid=41708&categoryId=41711|출판사=한국사전연구사|연도=1998}}</ref> 본관은 [[부안 김씨|부녕]](扶寧). 초명은 백일(百鎰),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이다.
 
== 생애 ==
1232년(고종 19)에 실시된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평안북도 정주군 사록(司祿)에 보임되었으나, 황각보(黃閣寶)의 고변으로 제주판관으로 발령나 1234년(고종 21)부터 1239년(고종 26)까지 [[제주]] [[판관 (벼슬)|판관]]으로 재임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장=김구|url=http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24811&cid=51955&categoryId=55527|출판사=한국학중앙연구회}}</ref> 원나라에 서장관으로 다녀온 뒤로는 8년 동안 한림원에 재직하였다. 할아버지가 중이었기 때문에 대간이 될 수 없었으나 재주를 인정받아 1263년(원종 4)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었다. 이어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추밀원부사·정당문학(政堂文學)·이부상서를 역임하였다.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라서는 문신들의 저술을 시험해 유능한 자에게 상을 주어 권장할 것을 건의하였다.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를 거쳐 1274년 충렬왕 즉위 뒤에는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참문학사(參文學事)·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를 역임하였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