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루스 3세 심플렉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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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지 = [[페론]]
| 문장 =
| 작위 = [[서프랑크 왕국]]의 왕<br>로타링기아의
| 재위 =
| 대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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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섭정 =
| 배우자 = [[프레데루나]] (907년-917년)<br/> [[웨섹스의 에드지푸]] (919년-)
| 자녀 = 루이 4세
| 왕가 = [[카롤루스 왕조]]
| 아버지 = [[루도비쿠스 2세 발부스]]
| 어머니 = [[파리의 아델라이데]]
| 매장지 =
| 종교 = 로마 가톨릭
| 서명 =
}}
 
'''샤를 3세'''(Charles III) 또는 '''단순왕 샤를''' (Charles the Simple, [[프랑스어]]: ''Charles III le Simple'', [[독일어]]: ''{{lang|de|Karl der Einfältige}}'', [[879년]] [[9월 17일]] &ndash; [[929년]] [[10월 7일]])은 [[카롤링거 왕조]]의 일원으로 [[프랑스의 군주|프랑스 왕]]([[서프랑크 왕국]])이었다. 샤를 3세는 재위기간 중 [[로트링겐]]을 되찾고 [[노르망디]]에 [[노르만족]]을 정착시켰다. 당대에 그는 '''카롤루스 심플렉스'''(Carolus Simplex)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그대로 그의 별칭이 되었다. 그의 축출을 기점으로 카롤링거 왕조는 로렌의 영지를 상실했다.
 
[[프랑크의 루이 2세|말더듬이 루이 2세]]의 유복자였으며 884년 의붓형 카를로망이 죽었을 때나 887년 11월 삼촌인 [[동프랑크]]의 뚱보 [[카를 3세]]가 물러났을 때, 나이가 너무 어려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났다가 [[893년]] [[1월 28일]] [[랭스]] 대주교 풀크 등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이후 일부 귀족들에 의해 추대된 [[외드]]와 5년간 대립하였다. [[동프랑크]]의 [[아르눌프 폰 케른텐|아르눌프]]는 샤를과 [[외드]]를 모두 [[보름스]]로 소환했지만 그는 아르눌프의 지시를 거절했고, 화가 난 아르눌프는 샤를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내란이 계속되자 [[897년]] 왕위를 포기했다가 [[898년]] [[1월]] 아들이 없던 [[외드]]가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죽음으로써 내전이 종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