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성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Gaudium21c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
복음성가는 죽지 않았다. 기독교의 혼은 여전히 뜨겁게 불타고 있다!!! |
||
6번째 줄:
복음성가는 [[1873년]]에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전도사인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Moody)의 부흥 운동에서 비롯하였다. 당시 복음성가는 오늘날의 [[찬송가]]에 보이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현대의 복음성가와는 성격이 달랐다. [[1899년]] 무디가 죽자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복음성가와 [[설교]]로 진행되었던 무디의 테크노 복음주의(Techno-Evangelicals)운동<ref>《[[메가처치 논박]]》/신광은 지음/정연출판사</ref>은 곧 시들해졌다. 당시 대중 오락시설이 별로 없었기에 사람들의 삶은 단조로웠고, 특히 기독교도들에게는 특별한 오락이 없었다. 이 까닭에 사람들 사이에서 감성적인 복음성가가 자주 불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복음성가는 본래의 목적인 복음 전달이 아닌 일상생활을 위한 노래로 성격이 바뀌어가고, 가사 내용도 단순하게 바뀌었다. 음악적으로도 흑인 [[기독교인]]들의 고난의 [[영성]]이 [[음악]]으로 표현된 흑인 영가와 영합하여 마침내 [[재즈]] 리듬까지 도입함으로써 극히 대중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현대 기독교 문화로 비추어 보았을때 복음성가는 현대적인 문화와 신앙적 요소가 접목된 ccm과 함께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불리어지고 있다.
== 같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