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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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인종 차별|인종주의]] 정책을 펼쳐 [[아리아 인종]]의 우월성을 강조하였으며, 인종적·사회적·문화적 청정을 요구하며 사회의 모든 요소에서의 정치적 지배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유대인]]과 [[집시]] 등의 소수 민족과 [[동성애자]]와 [[장애인]] 등의 불결하다고 여긴 사람들, 즉 [[살 가치가 없는 생명]]에 대한 철저한 박해를 통해서 추구하고자 했다.
 
[[1933년]]에 제정된 [[단종법유전병 자손 예방법]]([[:de:Gesetz zur Verhütung erbkranken Nachwuchses|Gesetz zur Verhütung erbkranken Nachwuchses]])에 의해 나치는 [[정신 질환|정신 장애]]를 포함하여 유전적 결함을 가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집단으로 살해했다. [[1940년]]에는 [[T4 작전]]에 의해 4천 명의 [[장애인]]들이 살해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독일의 지배 민족으로서의 청정을 유지한다”라는 나치의 선전으로 기술되었다. [[T4 작전]]은 [[1941년]] 공식적으로 중지 명령이 내려졌지만, 이러한 정책은 이어서 자행된 [[홀로코스트]]에 결합되었다.
 
[[1935년]]에 제정된 [[뉘른베르크법]]에 의해 [[유대인]]들은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공직으로부터 추방되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 시기에 직장을 잃었으며, 그 빈 자리들은 독일인 실업자들로 대거 교체되었다. [[1938년]] [[11월 9일]] 나치는 [[유대인]] 상점의 파괴를 실시했으며, 사건 당시 수많은 유리창이 깨졌다고 해서 [[수정의 밤 사건]]으로 불린다. 이 사건으로 [[1939년]] [[9월]]까지 2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네덜란드]], [[미국]], [[남아메리카]] 등으로 도망쳤으며,<ref>[[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를 보면 [[1938년]] [[유대인]] 학살 이후에 독일에서 살 수 없게 되자, 외삼촌들은 [[미국]]으로, 자신의 가족들은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야 했다고 했다.</ref> 나치는 이들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