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야구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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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 정보
|선수명 = 가네바야시 세이콘 <br /> 金林 星根 <br /> かねばやし せいこん김성근
|영문 표기 = KanebayashiKim SeikonSung Kun
|소속 구단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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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이즈 =
|사진 설명 =
|국적 = {{JPNKOR}}
|출신지 = {{JPN}} [[교토부]] [[교토 시]] [[우쿄 구]]
|생년월일 = {{출생일과 나이|194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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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근'''(金星根, かねばやし せいこん,1942년 12월 13일 ~ )은 [[일본]] [[교토]] 출신의 전 한국 실업 야구 선수이자, 현 [[일본 프로 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코치 고문이다. 현재 국적은 [[일본]]이며, 가족으로는 쌍둥이 형제인 전 [[한화 이글스]] 감독 '''김성근'''이 있다.
 
==선수 시절==
[[1942년]] [[일본]] [[교토부]]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ref>[https://archive.is/20120708010914/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783541 국가대표] - 중앙일보 칼럼</ref> 본적(부모 고향)은 [[경상남도]] [[진양군]]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난했다. [[교토]] 가쓰라고등학교(京都府立 桂 高等學校)에 재학 중이던 [[1959년]], 제4회 재일동포 학생 모국 방문 경기를 통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았고 고교 졸업 후 [[일본]] 사회인 야구 팀인 교토상호차량에서 뛰다가 [[1960년]] [[재일 한국인|재일교포]] 성인 구단 방문 경기를 하고 나서 [[동아대학교]]에 스카우트되었다. [[동아대학교]]를 중퇴하고 [[대한민국]] 실업 야구에 투신, [[1961년]] [[교통부]]에 입단하고 [[중소기업은행|기업은행]]의 창단 멤버가 되면서<ref>야구 팀 결단 중소기업은행에서, 동아일보 1962년 3월 11일</ref> [[1969년]] 초까지 활동했다. 좌완 [[투수]]로 빠른 직구를 주 무기로 삼아 [[1961년]] 제4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때 대표팀에 선발되어 [[대한민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963년]] [[11월 13일]] 대통령배 가을 리그 [[인천광역시|인천시청]]과의 경기에서는 볼넷 1개만을 내주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 [[1964년]] 실업야구 연맹전에선 다승 공동 2위(20승 5패)에 오르는 등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지나친 혹사로 어깨 부상을 당한 후 야수로 전업했고, [[1969년]]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선수로 뛰었던 [[1967년]] 현재의 아내 오효순과 결혼하였으며, 은퇴한 후 다음 해 마산상고 감독을 맡을 무렵에 아들 [[김정준]]이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