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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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33명의 상무집행위원과 105명의 중앙집행위원, 그리고 8명의 감찰위원 등 중앙간부를 선출하였는데, 간부 중 최용건·김책 등은 [[김일성]]이 정치적인 복선을 가지고 잠입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정치 활동연혁 ==
=== 정치 활동 ===
1945년 [[조선에 관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서|모스크바3상회의가 결정한 신탁통치문제]]에 대해 조선민주당은 반탁을 결의하였다. 이때 당수 조만식은 연금상태에 놓이게 된다. 부당수의 한 사람인 최용건이 조만식 당수를 파면하고 자신이 당수직에 취임하여 [[조선공산당]]과 보조를 맞추게 되어, 창당 취지가 변질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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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5.10총선]]에서 조선민주당측에서 부당수인 이윤영을 비롯하여 5명이 출마하였으나 이윤영만이 [[서울 종로구의 국회의원|서울 종로갑구]]에서 당선되었다. 정부 수립 후 조각과정에서 월남동포의 참여의식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이승만은 이윤영을 총리로 지명했으나, [[한국민주당]]측의 비협조로 국회의 인준을 얻지 못하여 무임소장관(뒤에 [[대한민국 보건복지가족부|사회부]]장관)으로 참여하였다.
 
=== 분당 ===
[[1946년]] [[조만식]]은 [[군정기|소련군정]] 또는 [[김일성]]에 의해서 연금되었으며, [[이윤영 (1890년)|이윤영]], [[한근조]], [[김병연 (1896년)|김병연]] 등이 월남함으로써, 북조선의 조선민주당과 남한의 조선민주당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남한의 조선민주당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윤영 (1890년)|이윤영]]이 총리서리에 지목될 정도로 성장하였으나 이는 [[조만식]] 등과 월남 반공인사에 대한 형식적인 배려였지 그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이윤영 (1890년)|이윤영]]은 1948년 7월 총리서리에 지명되었으나 한민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사회당 (대한민국, 1948)|사회당]]으로 정당으로서 발전을 모색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또한 [[평양청년회]], [[서북청년회]] 등으로 개칭하여 반공단체의 전위 역할을 하다가 [[1961년]] [[5·16 군사 정변]] 때 해산하게 된다.
 
북조선의 조선민주당은 부당수 [[최용건]]을 지도자로 받들고 그를 중심으로 운영되다가 [[1981년]] [[조선사회민주당]]으로 개칭한 바 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역대 총선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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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군정기]]
[[분류:대한민국의 정당]]
[[분류:대한민국의 보수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