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북스테후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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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년]] 경 ~ [[1707년]] [[5월 9일]])는 [[바로크 음악|바로크 시대]]에 속하는 북부 [[독일]]의 [[작곡가]]이며 [[오르가니스트]]이다.
 
출생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아버지 요하네스가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던 [[헬싱보리]](그 당시 덴마크령)에서 태어난 것으로 생각된다.<ref>[http://books.google.co.kr/books?id=qSXGOoambNcC&redir_esc=y. Dieterich Buxtehude: Organist in Lübeck, p.3, {{ISBN |1-58046-253-7}}]</ref>[[1668년]] 이래 북부 독일의 자유도시 [[뤼베크]]에서 성 마리아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였다. 이 교회의 성능이 좋은 큰 [[오르간]]으로, 그는 환상에 가득찬 장려한 오르간곡을 작곡하였고, 그 양식은 젊은 [[바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1668년]]부터 또 일종의 교회연주회인 '저녁의 음악'({{llang|de|Abendmusik}})을 번성하게 하여. 이것이 뤼베크시의 명물이 되었다. 독일 각지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찾아왔는데 [[아른슈타트]]의 교회에서 오르간 주자로 일하고 있었던 바흐는 [[1705년]]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듣기 위해 4주간의 휴가를 얻어 400km 떨어진 뤼베르크까지 왔다고 한다.<ref>모리모토 마유미, 《에피소드로 엮은 클래식 100》, 김재원 역, 반디출판사, 2008, p.141, {{ISBN |978-89-5804-135-1}}</ref> 그는 이 '저녁의 음악회'로 개인적인 명성을 높였으며 부유한 시민들로부터 경제적인 지원도 받았다.<ref>발터 잘멘, 《음악가의 탄생》, 홍은정 역, 심산, 2008, p.193, {{ISBN |978-89-89721-76-5}}</ref> 작품은 오르간곡 외에 다수의 [[칸타타]]와 [[미사곡]]이 있으며, 이것들은 형식의 다양성과 내면적 정서의 깊이에 있어 중기 바로크의 독일 [[프로테스탄트 음악]]을 대표하고 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