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3번째 줄:
후조의 시조 석륵은 원래 유연의 휘하에서 [[서진]] 토벌에서 큰 공적을 세웠다. 유연이 죽고 그 뒤를 계승한 유총도 죽자 전조에서 반란이 일어나 황제가 살해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석륵은 유연의 후손인 [[유요 (전조)|유요]]와 협력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유요을 황제에 즉위시켰다. 석륵은 조공이 되었고, 그후 독립하여 조왕을 칭했다.
 
석륵과 유요는 10년간 서로 겨루었으나 [[329년]] 석륵은 전조를 멸망시켰다. 이를 계기로 석륵은 '''천왕'''(천왕)을 칭하고 다음해 황제을 칭했다. 333년 석륵이 죽자 태자 [[석홍]]이 즉위했으나, 석륵의 친족 [[석호 (후조)|석호]]가 곧 실권을 빼앗고 석홍을 살해하고 말았다. 석호는 적극적으로 외정에 나섰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후조의 국력을 소모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349년]] 석호가 죽자 후계자 쟁탈전이 벌어졌고, 그 사이를 노린 석호의 양자였던 한족 [[염민]]이 나라를 빼앗아 [[염위]]을 건국했다. 이때 염민은 후조의 주요민족이던 갈족을 대량학살했다. 그후 [[석지]]가 일시적으로 후조를 부활시켰으나 얼마안가 염민에 의해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