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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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혁명|역사의 무대에서 좌파의 급격한 몰락]]은 국제적 아나키스트의 진영이 반자본주의 투쟁의 유일한 혁명적 대안으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지난 10년간 아나키스트 운동은 번성했으며, 이러한 성장의 대부분은 아나키즘의 가시적이고 활발하며 우상파괴적 활동에 매혹을 느낀 불만 많은 청년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었다...... 불행히도 모든 좌파가 하룻밤 새 퇴색되거나 그들의 근본을 바꾼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전(前)좌파들은 불가피하게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좌파적인 태도와 편견과 습관을 가져왔고, 그들의 옛정치 환경의 구조화된 가정들을 가진 채로 아나키스트 진영에 들어왔다. 그러한 모든 태도와 습관과 가정들이 필연적으로 권위주의적이거나 반(反)아나키스트적인 것은 아닐 테지만, 분명 그런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런 문제 중의 일부는 많은 전좌파들이 아나키즘을 단지 반국가주의 좌파로만 오해하면서, 이것의 부정할 수 없는 개인주의적 기반을 사회투쟁과 무관한 것으로써 경시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그들은 모든 형태의 사회적 소외를 폐지하고자 하는 자기 조직화된 운동과 단지 평등주의적인 형태로 생산을 재구성하려는 운동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부는 이를 이해하지만 여러 이유로 아나키즘 환경을 정치적 운동의 형태로써 개량하려 한다. 어떤 전좌파들은 사회적 소외의 폐지가 가망이 없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긱하기에생각하기에 이를 수행한다. 어떤 경우는 그들이 여전히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모든 개인주의적 요소(성적 요소이든 문화적 요소이든 간에)를 거부하는 흔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수행한다. 어떤 이들은 진정한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어떤 권력의 지위도 얻지 못할것이라고 냉소적으로 깨닫고선 조작의 여지가 많은 협소한 정치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 계속해서 어떤 이들은 자율적인 사고와 실천에 익숙하지 않고, 단순히 아나키스트 전통의 여러 측면에 대해 불안과 불편함을 느끼기에 아나키스트 환경에서 좌파의 그런 측면들을 밀어 붙이기를 원한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을 이끌어줄 명시적인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없이도 과거 처럼 간부나 활동가의 역할을 이어 나가기를 원한다.
 
아나키스트 환경에서 현재의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나키스트들은 끊임없이 이 모든 것들을 의식(신중하게 비판적으로)하고 있어야 한다.<ref>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jason-mcquinn-post-left-anarchy-leaving-the-left-behind</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