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원왕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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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6월 8일]]([[음력 5월 15일]])에 태어났다. 시파 계열이자 [[조선 정조|정조]]의 최측근으로 활약한 아버지 김조순의 영향으로 당시 [[왕세자]]였던 순조의 유력한 세자빈으로 떠올랐고 초간택과 재간택을 거쳐 사실상 세자빈으로 확정되었으나,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하자([[1800년]]) 최종적인 삼간택이 미루어졌고 결국 순조의 즉위 2년 뒤에 왕비로 책봉되었다.([[10월 2일]] ([[음력 9월 6일]])) <ref>[[#순조실록 (1838)|순조실록 (1838)]] [http://sillok.history.go.kr/id/kwa_10209006_001 4권, 순조 2년 9월 6일 갑술 1번째기사]</ref>
 
정사가 아닌 민간 전승에 따르면 정조는 어느날 밤에 꿈에 생부 [[조선 장조|사도세자]]가 꿈에 나타나 계시하였는데 그 계시가 김조순의 딸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세자인 순조가 [[김조순]]의 집을 방문했다가 순원왕후를 보고는 마음에 두어, 환궁 후 정조에게 [[김조순]]의 딸이 아니면 장가를 가지 않겠다고 정조에게 청하였고, 어린 아들에게 후견인이 필요하다고 본 정조는 옳다 여기고는 그걸 받아들였다고도 한다.
 
[[대왕대비]]인 [[정순왕후 (조선 영조)|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1804년]] [[2월 9일]] ([[1803년]] [[음력 12월 28일]])<ref>[[#순조실록 (1838)|순조실록 (1838)]] [http://sillok.history.go.kr/id/kwa_10312028_001 5권, 순조 3년 12월 28일 기축 1번째기사]</ref>, 순조의 친정이 선포되자 순조의 장인이자 순원왕후의 아버지인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은, 그때까지 정순왕후와 함께 권력을 쥐고 있던 [[김관주]]를 비롯한 [[경주 김씨]]의 [[벽파]]를 대규모로 숙청하고 [[김이익]](金履翼)과 [[김이도]](金履度) 등의 [[안동 김씨]] 시파를 등용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아 정순왕후 집권 이후 계속된 천주교 박해는 다소 완화되었다. 그러나 이 대규모 숙청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순원왕후는 [[1809년]]에 맏아들인 [[효명세자]]를 낳았는데 효명세자는 어릴때부터 총명하여 순조의 많은 귀여움을 받았다. 당시 순조는 안동 김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1819년]], [[풍양 조씨]]인 [[조만영]]의 딸을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맞아들였는데 훗날의 [[신정왕후 (조선)|신정왕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