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원왕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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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unwonwanghu Eopilbongseo in museum.jpg|thumb|left|순원왕후어필봉서.]]
[[파일:"Hangeul Letter" written by empress Sun-won-suk.jpg|230px|right|thumb|순원왕후의 [[한글]]편지]]
그러나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그녀는 친가인 안동 김씨 세력과 결탁하여 [[조선 장조|장헌세자]]의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 이인의 서손자로 작호가 없던 원범(元範)을 [[강화도]]에서 궁으로 데려와 덕완군(德完君)으로 책봉하고 자신과 순조의 양자로 입적하여 즉위시키니 조선의 제25대 왕인 [[조선 철종|철종]]이다.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를 이어나간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왕가 일원으로서 안동 김문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철종을 즉위시킨 뒤에 그녀가 철종의 왕비를 다시금 안동 김씨인 [[김문근]]의 딸([[철인왕후]])로 맞아들였다고 알려져있으나, 그녀의 언문어찰을 보면 오히려 지나친 권력집중을 꺼려 반대한 것을 알 수 있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던 [[1857년]] [[9월 21일]]([[음력 8월 4일]]), [[창덕궁]] 양심합(養心閤)에서 69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 사후 ===
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위치한 '''인릉'''(仁陵)으로 남편인 순조와 합장되어 있다.
 
이후 [[대한제국]] [[광무 (연호)|광무]](光武) 4년([[1900년]])에 남편 순조가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로 [[추존]]되자 그녀도 함께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로 추존되었고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에는 '대한 순조숙황제 인릉 순원숙황후 부좌(大韓 純祖肅皇帝 仁陵 純元肅皇后 祔左)'라는 묘비가 새로 세워졌다.<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za - 『고종실록』 39권, 36년(1899 기해 / 대한 광무(光武) 3년) 12월 7일 4번째 기사</ref>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33통의 편지로 구성된 《순원왕후어필봉서》(純元王后御筆封書)가 있는데 가문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당대 정치에 대한 관심 등을 표현하였고 글씨도 우아한 궁체(宮體)로 되어 [[19세기]] [[한글]] 편지의 특징과 언어, [[서체]] 이해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 저작 ==
* 《순원왕후어필봉서》(純元王后御筆封書) 33통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