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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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데냐 왕국의 통일 전쟁 ===
 
[[1848년]]은 프랑스에선 [[프랑스 2월 혁명|2월 혁명]]이, 영국에선 [[챠티스트 운동]]이, 독일에선 [[1848년 독일 혁명]]이 일어난 [[[1848년 혁명|격동의 해]]였다. 사르데냐 왕국은 1848년 프랑스의 지원 없이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제1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을 선포하였다. 초반 전투에서는 사르데냐 왕국이 승기를 잡았으나 이후 전세가 역전되어 사르데냐 왕국은 패전하였다. 사르데냐 왕국의 [[카를로 알베르토 1세]]는 배상금으로 6천 5백만 프랑크를 오스트리아에 즉시 지급하는 조약에 서명하였다.
 
1853년 영국과 프랑스는 흑해의 패권을 놓고 [[러시아 제국]]을 상대로 [[크림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보다 많은 동맹군이 필요하였던 영국과 프랑스는 [[사르데냐 왕국]]을 연합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였고, 이를 계기로 사르데냐 왕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이탈리아 통일의 지원군을 얻게 되었다. 1849년 카를로 알베르토 1세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이 사르데냐 왕국의 군주가 되었다. 프랑스의 지원을 확보한 사르데냐 왕국은 1859년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을 선포하였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권력은 사르데냐와 페이몬트를 지배하는 사르데냐 왕국,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영토로하는 [[양시칠리아 왕국]], [[교황령]],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는 [[롬바르디-베네치아 왕국]]으로 사분되어 있었다. 오스트리아가 사르데냐에 군대 해산을 요구하자 이를 빌미로 프랑스가 개입하였다.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에서 [[주세페 가리발디]]는 양시칠리아 왕국을 단숨에 정복하여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으로 등장한다. 가리발디는 1860년 민병대인 붉은 셔츠단을 조직하고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 걸쳐 있던 [[양시칠리아 왕국]]을 정복하여 사르데냐 왕국에 헌납하였다. 이로 인해 사르데냐 왕국은 급속하게 통일 운동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사르데냐 왕국의 수상 [[카밀로 벤소 디 카보우르 백작]]는 교황령을 통일 이탈리아왕국의 영토로 편입하고 로마를 수도로 삼을 것이라 발표하였고, 교황 비오 9세는 이에 즉각 반발하였다. 프랑스는 로마에 자국군을 주둔하여 이탈리아의 교황령 침공을 견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