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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으로 카르타고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막대한 배상금을 로마에 물어주고 지중해 서부의 재해권과 이권을 로마에 빼앗기고 말았다.
 
[[제3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149년에서149년]]에서 146년까지 일어났다.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와 사실상 군신관계에 있던 카르타고는 로마의 허락없이 또다른 동맹국인 '[[누미디아 왕국]]'을 침범한 것에 의해침범하여 성난 [[로마 원로원을원로원]]을 정적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제거한 강경파 [[대 카토]]가 "카르타고를 반드시 섬멸해야 합니다."라고 선동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하고발발했다. 로마와 카르타고의 세번째 전쟁에서 결국에는카르타고가 멸망해, 로마의 [[로마의 속주|속주]] 중에 하나인 '[[속주 아프리카]]'로 전락하게 되었다.
 
=== 멸망 ===
[[파일:Tunisie Carthage Ruines 08.JPG|thumb|right|카르타고의 폐허 유적]]
[[기원전 149년]] 로마는 카르타고의 조약 위반에 따른 대가로 수도 카르타고를 버리고 이주하라는 조건으로 카르타고를 압박해왔다. 카르타고 원로원은 이 요구를 현실적으로현실을 생각해 받아들이려고 하였으나, 카르타고를 버리고 이주하라는 로마의 요구는 카르타고 사람들의 [[직업]]인 [[상업]]을 포기하라는 말이기 때문에 성난 민중이 반란을항쟁을 일으킴에 따라벌여 결국 묵살하고, 3차 포에니 전쟁에 돌입했고,돌입하였다. 로마는 카르타고에 대한 공성전을 벌였다.카르타고와 [[제2차 포에니 전쟁공성전]]을 끝내기도벌였다. 카르타고 시민들도 여성들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머리카락]] 외손자잘라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 이끄는시위로 로마군은쓰도록 3년에 걸친정도로 공격으로로마에 결국거세게 카르타고저항했다고 도시를 함락하고 주민을 완전히 축출했으며, 도시를 불태우고 소금을 뿌려 황무지로 만들었다한다. 하지만 로마는 살아남은 카르타고 시민들을 아프리카에서 살수 있도록 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끝내기도 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외손자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3년에 걸친 공격으로 결국 카르타고 도시를 함락하고, 주민을 완전히 축출했으며, 도시를 불태우고 소금을 뿌려 황무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로마는 살아남은 카르타고 시민들을 아프리카에서 살수 있도록 했다.
 
== 경제 ==
 
=== 상업국가 ===
카르타고는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기원전 3세기 전반까지 서(西)지중해에서 최대의 세력을 떨쳤으며, 무역으로 번영하였는데 특히 상업귀족의 세력이 매우 강대하였다.
 
==== 교역한 상품 ====
카르타고는 지중해 연안의 풍부한 광물 자원을 장악했다. 사르데냐는 광물 자원이 물량으로는 적었으나, [[납]], [[아연]], [[구리]], 철, [[은]] 등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히스파니아 광산은 매장량이 보다 풍부했고, 250년간 계속 채굴했지만 여전히 납, 아연, [[수은]], 구리, [[금]], 은과 수백만 톤의 [[철광석]]을 생산했다. 히스파니아의 [[카디스|가데스]]를 떠난 카르타고인들은 아마 오래전의 페니키아인들이 한 것처럼, 북쪽 [[콘월]]로 항해하여 값진 [[주석 (원소)|주석]]을 배에 싣고 오기도 했다. 이 곳을 거점으로 남쪽으로 아프리카 해안 방향으로 [[황금 해안]], [[카메룬]], 심지어 [[가봉]]까지 갔으며 그곳에서 금, [[상아]], [[노예]], 전쟁용 코끼리를 실어왔다. 카르타고에서 생산한 많은 광물은 본국 주물 공장뿐 아니라 동부 지중해의 [[헬레니즘]] 세계로 운송되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전 수세기 동안 동쪽과 서쪽을 잇는 해운업은 사실상 카르타고가 독점했다. 지중해 서부에서 [[고대 그리스|그리스]] 선박이선박을 발견되면발견하면 십중팔구는 격침되었다격침하였다. 이런 정책 덕분에 카르타고 상인들은 그 지역 내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한 상품들을 독점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카르타고의 제품 중 자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은 직물, 특히 소라껍질에서 추출한 자주색으로 [[염색]] 가공한 직물뿐이었다직물이었다. 자주색으로 염색가공한 직물을 사려면 [[노동자]]의 1년임금을 주어야 할 정도로 값비싼 사치품이었다고 한다. 카르타고 산 직물은 지중해 세계 전역에서 호평을 받았다.<ref>M 하이켈하임, pp.171~172.</ref>
 
=== 농업 ===
카르타고인은 과학적 영농에 특히 노예들을 이용한 집단 농장([[플랜테이션]])의 발달에 이바지했다. 로마인들은 이들에게서 대규모 노예 노동력을 이용하여 판매용 단일 곡물이나 단일 산물을 재배하는 기법을 배웠다.<ref>M 하이켈하임, p.172. 146년 카르타고가 멸망한 직후, 로마 [[원로원]]은 틀림없이 이탈리아의 부유한 지주들이 활용할 용도로 [[마고]](Mago)가 카르타고의 농업에 관해서 쓴 32권의 고전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도록 지시했다. - 마고의 저서는 로마인들으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카르타고 문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저서가 후기 로마의 농업 관련 저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그 영향력은 중세 [[에스파냐]]의 [[무어인]]과 아마 에스파냐인에게도 간접적으로 전달되었다. 에스파냐인들은 [[신세계]]에서 노예 노동력을 이용한 플랜테이션 농업을 뿌리내렸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