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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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41년]]에 즉위한 [[전한 무제]](武帝)는 흉노와 맺은 조약을 파기하고 흉노와 전면적인 전쟁을 시작하였다. 무제는 [[기원전 129년]]부터 [[위청 (장군)|위청]](衛靑), [[곽거병]](霍去病) 등을 파견, 흉노를 공격하고 황하 서쪽 지역에 처음으로 진출해 '하서사군'(장액·주천·돈황·무위)을 설치했으며, 나아가 서역(西域 : 간쑤성 및 신장 자치구 일대)을 정벌하였다. 한군이 서역을 정벌하고 비단길을 통제하게 되자 흉노는 경제적으로 약화되었다. 한과 흉노의 전쟁으로 전한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으며, 흉노의 피해는 더 커서 흉노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기원전 60년]]경 흉노에서는 선우 자리를 놓고 수십개의 부족으로 분열되어 내전이 일어났으며 [[호한야 선우]](呼韓邪 單于)는 [[기원전 51년]] 한나라의 지원을 얻었다. 한나라의 지원을 받은 호한야에 의해 흉노는 재통일되었으며 전한과 화친을 맺었고, 이는 [[전한]]이 멸망할 떄까지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때 질지(郅支) 선우는 [[서흉노]]를 이끌었는데, 후에 동흉노에 패하여 다시 흡수되었지만, 일부 집단은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이 시기 흉노의 내분과 약화의 원인으로는 당시 몽골 고원이 한랭화되었던 것을 지목하기도 한다.
 
[[왕망]](王莽)이 [[신나라|신]](新)을 건국한 직후 흉노와 중국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어 이 시기에 흉노가 신나라를 침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한]]이 건국된 시점에서는 흉노는 수십개 부족으로 다시 분열된 상태였으며 그 수도 많지 않았는데 이중 남흉노는 후한에 복속되어 오르도스 및 [[산시 성 (산서성)|산시 성]](山西省) 일대에 거주했으며, 북흉노는 몽골 고원에 남았다. [[89년]]에 후한과 남흉노의 연합군은 북흉노를 공격하여 멸망시켰으며 북흉노의 일파는 서방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서방으로 향한 북흉노를 훈족으로 보기도 한다. 북흉노의 멸망 직후 몽골 고원에는 선비(鮮卑)·오환(烏桓) 등의 다른 유목 부족들이 성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