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그레이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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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관련 ==
그는 1952년 한국전쟁 때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ref>[http://www2.wheaton.edu/bgc/archives/docs/KoreaVisit1952/Timeline.htm (1952년성탄절 한국방문 여정표:영문) Christmas in Korea-1952 Timeline Wheaton College ]</ref> 부산과 대구, 서울에서 한국인을 위해 집회를 열었고,일선지구에 있는 미 장병을 위문하고 성탄 메시지를 전했다. 부산에서 12월17일 야외집회에는 [[함태영]] 부통령이 참석했다. [[한경직]] 목사의 통역으로 집회를 열었고 12월18일 부산에서 마지막 집회에서는 8000명이 모였다. 서울집회는 한경직 목사가 담임하신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의 통역으로 갖었다.<ref>[https://ilovenm.blogspot.com.] "빌리 그레이엄 목사: 그의 첫 한국방문과 알버커키", 광야의 소리 2018년3-4월호 (ilovenm.blogspot.com)</ref> 한국방문중에 쓴 일기를 "당신 아들을 전쟁터에서 보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이듬해에 발간하여 책 판매에서 얻어진 수익 전액을 한국전쟁 구호금과 선교비로 한국에 보냈다.<ref>[http://www.koreanwar-educator.org/topics/homefront/p_sons.htm] ("당신 아들을 전쟁터에서 보았습니다", 책 소개 :영문) "I saw your sons at war" </ref> [[1958년]] [[서울운동장]]에서 [[이승만]] 대통령 등 당시 정부 요인이 참관한 가운데 집회를 개최하였다. [[1973년]] 한국전도 대회는 한경직목사가 준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초청하여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3일에5일에 걸친 전도집회를 김장환 목사의 통역으로 개최했다. 마지막 날 집회에선 110만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집회 역사상 최다수가 모인 집회가 되었다. [[1984년]] 한국 선교 100주년 기념대회에서도 여의도를 방문하여 설교를 하였다. 1992년과 1994년에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의 초청을 받아 북한을 방문하였다. [[1997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인 [[루스 벨 그레이엄]] 여사가 북한으로부터 초청받아 장녀 지지와 차남 네드를 대동하고 평양을 방문하였다.
 
== 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