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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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Sanskrit-Tibetan Index for the Yogâcārabhūmi-śāstra (Yokoyama and Hirosawa)
"}})는 그 [[본질적 성질]]이 [[부적정]](不寂靜: 고요하지 않음)인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번뇌의 [[본질적인 작용]]은 번뇌가 일어나게 되면, 그 번뇌를 [[불교 용어 목록/ㄷ#대치|대치]](對治)하지 않는 한, 그 자체의 [[본질적인 성질]]에 [[불교 용어 목록/소#소의|근거]]하여 그 번뇌가 [[일으키는]] 부적정한 [[행 (불교)|영향력]][行] 즉 부적정한 [[업 (불교)|업]]이 [[5온|몸과 마음]]에 [[상속 (불교)|상속]]되어 [[전전]](展轉)하게 하는 것이다.{{sfn|미륵 조, 현장 한역|T.1579|loc=《[[유가사지론 1-24권]]》 [[유가사지론 1-24권 제8권|제8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0n1579_p0313a27 T30n1579_p0313a27 - T30n1579_p0313a29]|quote=<br>"煩惱自性者。謂若法生時其相自然不寂靜起。由彼起故。不寂靜行相續而轉。是名略說煩惱自性。"}}{{sfn|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614, T.1579|loc=《[[유가사지론 1-24권]]》 [[유가사지론 1-24권 제8권|제8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09&startNum=213 213 / 829]|quote=<br>"번뇌(煩惱)의 자성(自性)<sup style="color: blue">3)</sup>이란 말하자면, 만약 법(法)이 생겨날 때 그 상(相)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적정(寂靜)하지 않게 일어나며 그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적정하지 않은 작용[行]이 상속(相續)하며 구른다. 이를 간략하게 말하여 번뇌(煩惱)의 자성(自性)이라고 한다.
<br><sup style="color: blue">3)</sup> 이하는 번뇌잡염(煩惱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첫번째로 번뇌의 자성(自性)에 대해서 기술한다."}} 달리 말해, [[인과 (불교)|필연]]적으로, 번뇌로 인해 [[업 (불교)|업]]이, 특히 [[악업]]이 발생하고, [[업 (불교)|업]]으로 인해 [[고 (불교)|괴로운 상태]][苦]에 처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와 같이 번뇌[惑]가 일어나 [[3업|몸과 말과 마음]]으로 [[삼성 (불교)|악]]한 [[불교 용어 목록/삼#삼업|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육도 (불교)|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 [[혹업고]](惑業苦)의 [[3도 (불교)|3도]](三道)라고 한다.{{sfn|고려대장경연구소|loc="[http://kb.sutra.re.kr/ritk/service/diction/dicView.do?popupYn=Y&dicId=4533 삼도 三道]". 2013년 4월 26일에 확인|ps=<br>"삼도 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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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2) 업도(業道). 이치와 현상에 대한 미혹으로 일으키는 그릇된 행위와 말과 생각.
<br>(3) 고도(苦道). 그릇된 행위와 말과 생각을 일으킨 과보로 받는 괴로움."}}
그리고 [[12연기]]의 [[유전연기]](流轉緣起)는 [[무명 (불교)|무명]]으로 대표되는 번뇌[惑]에서 [[업 (불교)|업]]으로 업에서 [[고 (불교)|고]]로 이어지는 [[혹업고]]의 [[연기관계]]를 보다 자세히 밝힌 것이다.{{sfn|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613|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3_p0853a06 T31n1613_p0853a06 - T31n1613_p0853a18]. 사견(邪見)|ps=<br>"云何邪見。謂謗因果。或謗作用。或壞善事。染慧為性。謗因者。因謂業煩惱性。合有五支。煩惱有三種。謂無明愛取。業有二種謂行及有。有者。謂依阿賴耶識諸業種子此亦名業。如世尊說。阿難。若業能與未來果彼亦名有。如是等。此謗名為謗因。謗果者。果有七支。謂識名色六處觸受生老死。此謗為謗果。或復謗無善行惡行。名為謗因。謗無善行惡行果報。名為謗果。謗無此世他世。無父無母。無化生眾生。此謗為謗作用。謂從此世往他世作用。種子任持作用。結生相續作用等。謗無世間阿羅漢等。為壞善事。斷善根為業。不善根堅固所依為業。又生不善。不生善為業。"}}{{sfn|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loc=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372&startNum=11 11-12 / 24]. 사견(邪見)|ps=<br>"무엇을 사견이라고 하는가? 인과를 비방하고, 혹은 작용(作用)을 비방하고, 흑은 선한 일을 파괴하는 오염된 지혜를 성질로 한다. 인(因)을 비방한다란 무슨 뜻인가? 인온 업의 번뇌성을 말한다. 합해서 다섯 가지가 있다.
<br>번뇌에는 무명{{.cw}}애(愛){{.cw}}취(取)의 세 가지가 있다. 업에는 행(行) 및 유(有)의 두 가지가 있다. 유란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의지하는 모든 업의 종자를 말한다. 이는 또한 업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br>“아난아, 만약 업이 능히 미래의 과보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또한 유라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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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질과 작용 ==
 
[[탐]](貪){{.cw}}[[진 (불교)|진]](瞋){{.cw}}[[무명 (불교)|치]](癡){{.cw}}[[부정견|견]](見){{.cw}}[[불교 용어 목록/지#질|질]](嫉){{.cw}}[[간 (불교)|간]](慳) 등의 번뇌는 그 각자의 개별적인 [[본질적인 성질]][自性]과 [[본질적인 작용|작용]]을 가진다. 한편, 이들은 또한 번뇌 일반으로서의 [[불교 용어 목록/경#공상|공통적인 성질과 작용]][共相]도 가지는데, [[대승불교]]의 논서인 《[[유가사지론]]》 제8권, 《[[대승아비달마집론]]》 {{nowrap|제4권}},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6권에 따르면, 모든 번뇌의 공통적인 성질 즉 번뇌 일반의 본질적인 성질은 [[부적정]](不寂靜), 즉, [[고요하지 않음]]이다. 그리고 이들 논서에 따르면 번뇌 일반의 본질적인 작용은 부적정한 [[행 (불교)|영향력]][行] 즉 부적정한 [[업 (불교)|업]]이 [[5온|몸과 마음]]에 [[상속 (불교)|상속]]하여 [[전전]](展轉)하게 하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몸과 마음의 상속]]'[身心相續] 시에 즉 [[5온]]의 [[상속 (불교)|상속]] 시에 [[부적정]]이 [[인과의 법칙]]에 따라 여러 가지 양태로 전개되어 함께 같이 가는 것이다.
 
{{인용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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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뇌는 [[이십살가야견|나]]와 [[내 것]][自身]이라는 각종의 큰 나무가 빽빽이 모여 있는 것이다. 《[[유가사지론]]》 제8권.{{sfn|미륵 조, 현장 한역|T.1579|loc=《[[유가사지론]]》 제8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0n1579_p0314c09 T30n1579_p0314c09 - T30n1579_p0314c10]. 조림(稠林)|ps=<br>"種種自身大樹聚集故名稠林。"}}{{sfn|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614, T.1579|loc=《[[유가사지론]]》 제8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09&startNum=222 222 / 829]. 조림(稠林)|ps=<br>"갖가지 자기[自身]라고 하는 큰 나무들이 모여 있기[聚集] 때문에 조림(稠林)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 번뇌는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는 갖가지 [[업 (불교)|업]][行]에 대해 널리 [[염착]]을 일으키게 하여 [[중생|유정]]을 [[5취]](五趣)로 [[유전 (불교)|유전]](流轉)시킨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4권.{{sfn|무착 조, 현장 한역|T.1605|loc=《[[대승아비달마집론]]》 제4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5_p0678a25 T31n1605_p0678a25 - T31n1605_p0678a28]. 조림(稠林)|quote=<br>"稠林有三。謂貪稠林瞋稠林癡稠林。由依止貪瞋癡故。於諸生死根本行中廣興染著。令諸有情感種種身流轉五趣。是故貪等說名稠林。"}}{{sfn|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loc=《[[대승아비달마집론]]》 제4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364&startNum=82 82 / 159]. 조림(稠林)|quote=<br>"조림(稠林)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탐조림(貪稠林)ㆍ진조림(瞋稠林)ㆍ치조림(癡稠林)을 가리킨다. 탐ㆍ진ㆍ치에 의지하는 것에 연유하는 까닭이다. 여러 생사에 근본하는 행 가운데 처해서 널리 염착을 일으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갖가지 신체를 감수케 하여 5취(趣)로 유전시키기에, 탐조림 등으로 해설해서 조림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 번뇌는 [[중생|유정]]들이 [[생사]]의 길을 갈 때 마치 커다란 나무들이 밀집한 숲속에 처한 것처럼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게 한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7권.{{sfn|안혜 조, 현장 한역|T.1606|loc=《[[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7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6_p0725c08 T31n1606_p0725c08 - T31n1606_p0725c11]. 조림(稠林)|quote=<br>"稠林有三。謂貪瞋癡。由依止貪瞋癡故。於諸生死根本行中廣興染著。令諸有情感種種身流轉五趣。令諸有情處生死本行大樹稠林難可出離。是故貪等說名稠林。"}}{{sfn|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6, T.1605|loc=《[[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7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365&startNum=160 160 / 388]. 조림(稠林)|quote=<br>"‘조림(稠林:울창한 숲)’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탐조림(貪稠林)ㆍ진조림(瞋稠林)ㆍ치조림(癡稠林)을 가리킨다. 탐ㆍ진ㆍ치에 의지하는 것에 말미암는 까닭이다. 여러 생사에 근본하는 행 가운데 처해서 널리 염착을 일으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갖가지 신체를 감수하게 해서 오취(五趣)로 유전시키는 것이다. 여러 유정들이 생사의 길을 가는 것이 마치 커다란 나무들이 밀집한 숲속에 처한 것처럼 여기서 벗어나기 힘든 까닭에 ‘조림’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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