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망파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링크 변경 (우금 (문칙) → 우금
7번째 줄:
|교전국1=조조
|교전국2=유비
|지휘관1=[[하후돈]] <br /> [[우금 (문칙)|우금]] <br /> [[이전 (후한)|이전]] <br /> [[하후란]]† <br /> [[한호 (후한)|한호]]
|지휘관2=[[유비]]<br /> [[제갈량]] <br /> [[관우]] <br /> [[장비]] <br /> [[조운 (촉한)|조운]] <br /> [[관평]] <br /> [[유봉]]
|병력1=100000 명
24번째 줄:
한편 조조는 북방이 모두 평정되자 삼공의 직책을 없애고 승상인 자신이 모두 겸하였고 그 아래로 부하 [[모개]]를 동조연, [[최염]]을 서조연, [[사마의]]를 문학연으로 삼아 자신의 친위 세력들도 문관들을 갖추어 놓고 남쪽으로 진군할 준비를 했다.
 
그리하여 조조는 부하 [[하후돈]]을 도독으로 삼고 [[우금 (문칙)|우금]], [[이전 (후한)|이전]], [[하후란]], [[한호 (후한)|한호]]를 부장으로 삼아 10만 대군을 주어 박망성으로 가 신야를 엿보라고 명했다.
 
=== 전투 과정 ===
35번째 줄:
박망파에 이르자 유비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하후돈을 요격하고 조운과 함께 후퇴한다. 날이 저물자 하후돈은 쉴새 없이 전진했으나 뒤를 따르던 우금과 이전이 갈대밭에서 유비군의 화공을 받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조운이 하후돈은 급습해 하후돈은 그대로 불길을 헤집고 달아났다.
 
한편 후군에 남아 있던 이전은 박망성으로 급히 달려갔으나 도중 관우와 맞닥뜨려 간신히 혈로를 뚫고 달아났으며 우금도 군량과 마초에 불이 붙자 그대로 도주해버렸고 이에 하후란과 한호가 군량과 마초의 불을 잡으려 왔다가 장비와 맞닥뜨려 하후란이 죽자 한호도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결국 다음날 하후돈은 달아난 장수와 군사들을 모아 수습해 겨우 허창으로 돌아갔으나 군사를 태반이나 잃고 마초와 군량까지 모두 타버려 남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 결과 및 영향 ===
전투 후 관우, 장비를 비롯해 조운, 관평, 유봉 등 전투에 나갔던 장수와 군사들이 신야성으로 합류해 들어왔고 제갈량이 전리품을 나누었다.
 
이에 조조는 직접 50만 대군을 이끌고 유비와 형주 정벌에 나서게 되고 중간에 조조와 결탁한 유표의 아들 [[유종 (후한)|유종]]과 채씨 세력과의 대립 등으로 유비는 조조와의 [[장판 전투]]에서 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