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쑤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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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쑤 성은 고대 문화의 발전이 꽤 이른 지역 중 하나이다. 이는 최근 이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중기와 말기의 석기, 골각기, 동물의 화석과 인류가 불을 이용했던 여러 흔적과 7,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 여러 유적 8,000여 점이 증명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여러 이민족이 집거하였으며 허시(河西) 지방에 [[흉노]], [[월지]], [[오손]]이 집거하였다.
 
[[진나라 (秦)|진]](秦) 때는 위하(渭河) 상류와 경하(涇河) 유역 등지에서 온난하고 다습한 기후와 비옥한 황토를 비롯한 자연환경을 이용해 농업이 발전하였다. 한(漢)의 절정기인 [[한 무제]](武帝) 시대 이후 동서 교역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이 지역은 [[실크로드]](丝绸之路)의 간선 지대로 부각된다. 삼국의 대립 이후 전개된 분열 시대에는 관(官)무역이 쇠퇴하는 대신 변경 무역이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수(隋)에 들어 분열을 마감하고 하서(河西)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변경 무역이 도읍인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으로 연장된 결과 [[하서]](河西)의 [[둔황]](敦煌)은 동서 교통 문호로서 흥성한 후 [[한족]]·[[몽골족]]·[[티베트족]] 등 여러 민족 간 분쟁이 계속되었고 [[안사의 난]] 이후 국세 쇠락과 더불어 티베트의 잦은 침입과 함께 천산 이북에서 [[위구르족|위구르]]가 진출했으므로, 이 지역은 당 휘하에서 멀어졌고 11세기에서 13세기에는 [[서하]](西河)국이 간쑤 성 대부분을 지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