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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출생일과 만나이|1950|4|23}}
|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읍|장안면]] (現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
| 직업 = [[가수]], [[싱어송라이터]], [[MC (사회자)|방송인]]
| 활동시기 = [[1969년]] ~ 현재
| 장르 = [[포크 록]], [[팝 음악|팝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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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읍|장안면]](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 [[최원봉]]과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백호라는 이름은 아버지 [[최원봉]]의 스승이자 동양철학자였던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령 [[김범부|범부 김정설]]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다.
 
1973년부터 1976년까지 [[국방의 의무|대한민국 육군 사병으로 군 복무]]하였으며, 1976년 제대 후 부산 음악살롱 무대를 전전하던 중 하수영과의 인연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가수로 데뷔하였다. 데뷔곡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3개월 만에 6,000장이 판매돼 가요계에 최백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78년에는 독특한 창법으로 연이은 히트를 하여 정식 데뷔 1년여 만에 톱 가수 반열에 올랐다. 가요제가 한창 무르익을 1979년에는 인기 포크 록 그룹 [[산울림]], [[사랑과 평화]], 인기 가수 [[김만준]], [[전영]] 등과 함께 대학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가요계를 휩쓸며 주류를 이루던 [[트로트]] 가요를 밀어내고 새바람을 일으켰다.
 
데뷔와 동시에 전성기를 누비던 최백호는 1980년 당시 국민배우 [[김자옥]]과 결혼하였고 《영일만 친구》라는 곡으로 TBC 방송가요대상 남자가수상을 수상하였다. 1983년에는 《고독》이라는 곡으로 [[MBC]] 10대 가수상,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상을 수상하여 정상에 올랐다.
 
김자옥과 이혼한 후 시련을 겪다 1984년 재혼한 후 복귀하였다. 1987년에는 [[삼각산]] [[경국사]]에 들어가 가수로서의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작곡에 전념하였지만 1년 후 《시인과 촌장》을 끝으로 1989년 1월 [[미국]]으로 이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잠시 한인방송 라디오코리아 DJ로 활동하였다.
 
그 후 1990년 2월에 다시 귀국하였고 공연 관련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1991년 3월 [[1991년 대한민국 지방 선거|지방 선거]]에서 [[무소속]] [[서울특별시의회|서울특별시 의회 의원]] 후보 출마하였지만 낙선하였다. 1996년 삶의 허무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을 담은 《낭만에 대하여》라는 곡이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삽입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